국토교통부가 빼든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조치가 부동산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의견이 있는가 하면 장기적으로 부작용만 낳을 것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시비 다툼이 어지러운 가운데 직격탄을 맞은 재건축 단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위헌 논란까지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주택법 시행령상 제도 적용 범위를 벗어나 있던 재건축 단지까지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된 것이 화근이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14일 현재 서울에서 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단지는 착공 85개, 관리처분인가 66개 등 151개에 이른다. 가구 수로 치면 13만7000이나 된다. 한마디로 하면 이번 조치로 날벼락을 맞게 된 곳들이다.

이들 아파트 소유자 중엔 투기꾼도 상당수 있을 수 있지만 번듯한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십년을 거주해온 이들도 적지 않다. 후자에 해당하는 이들은 그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하소연할 곳조차 찾지 못한 채 억울함을 참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재건축을 위해 철거 작업에 들어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사진 = 연합뉴스]
재건축을 위해 철거 작업에 들어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사진 = 연합뉴스]

이들 중 일부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가 하면 일부 재건축 조합에서는 상황 전개에 따라 헌법소원을 제기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정부가 법령을 소급해 적용함으로써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2일 주택 정비사업 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을 늘리기 위해 주택법 시행령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을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 단지에서 ‘최초 입주자 모집 승인 신청’ 단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미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고 이주를 시작했거나 마친 단지, 철거 작업에 들어간 단지들까지도 상한제 대상에 포함될 처지에 놓였다. 이들 단지는 인가된 관리처분계획에 의해 이미 얼개가 정해진 사업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조합원 분담금 또한 다시 책정해야 한다. 조합원 개개인들로서는 실정법을 믿고 이미 짜놓은 자금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을 만난 셈이다. 억대의 돈을 장만할 능력이 안 돼 망연자실해 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당연히 이들 단지 주민들은 정부가 소급 입법을 통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이들이 침해당했다고 말하는 이익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닌 기대이익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 같은 주장에 억장이 무너진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조치는 발표 이전부터 논란을 낳았다. 심지어 경제부총리와 여권 일부 인사들도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진작부터 분양가 상한제 도입 여부는 각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당정협의에서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적용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당정협의에서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적용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 [사진 = 연합뉴스]

예상했던 대로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확대 적용 방침이 발표된 이후 반발 여론이 크게 나타나자 국토부는 여론 달래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선은 이번 발표로 단지 지정 요건이 완화됐을 뿐이라거나 제도적 요건이 갖춰지게 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상한제를 일률 적용했던 과거와 달리 주택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를 통해 적용 대상을 선별하기로 했다는 점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이번엔 선별적 지정이라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며 “사업상 이윤이 크게 감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새 방침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국토부는 지난 13일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비판적인 언론 보도 내용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이를 통해 국토부는 주정심을 앞세우며 이번 조치가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투기과열지구라 해서 분양가 상한제가 일률 적용되는 게 아니며, 구체적 적용 지역과 범위는 주정심이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어느 지역을 언제 결정할지는 전적으로 주정심이 결정하게 된다는 의미다. 관계부처와 긴밀한 협의 하에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국토부는 과거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했던 2007~2014년 당시 서울 집값이 안정세를 보였고, 규제가 풀린 2015년부터 시장이 과열됐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분양가 상한제가 주택정비 사업의 진척을 더디게 해 공급부족을 낳고, 이 것이 결국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리라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 주장은 2008년 후반부에 시작돼 2009년 우리 경제에 큰 후유증을 남긴 금융위기 요소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2009년 우리 경제는 0.8%의 성장률을 기록했을 만큼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그 여파가 한동안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 역시 침체기를 보냈다.

어쨌든 국토부의 거듭된 해명의 초점은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도입 여파가 시장이 우려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맞춰져 있다. 국토부의 주장대로라면 향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여부는 정부 각 부처의 의견과 주정심의 판단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우려와 불확실성은 쉽게 제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정심을 직접 이끄는 이가 국토부 장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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