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 이어 아시아 각국 증시가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출렁이는 모습을 보이자 ‘R의 공포’가 엄습한 탓이란 분석들이 제기됐다. 근원은 미국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이었다. 평시와 달리 장기 국채의 금리가 단기 국채 금리보다 낮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로 인해 'R의 공포'가 되살아났고, 그 결과 세계 주요 주식시장이 폭풍을 만난 듯 연쇄적으로 흔들렸다.

'R의 공포'의 ‘R’은 ‘Recession’의 이니셜로서 경기침체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지난 15일 증시의 발작적 움직임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 경험은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면 곧 세계적 경기침체가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는 장기 채권일수록 금리가 높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장기 채권 수요가 늘고 자연스레 금리가 낮아진다. 채권 금리 하락은 채권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14일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장중 한때 2년물 국채 금리가 1.634%를 기록하며 10년물 금리 1.623%를 앞지르는 현상이 벌어졌다. 채권 금리 동향은 곧 정상화되는 쪽으로 흐름을 보였지만 역전 현상은 하루 뒤인 15일까지 지속됐다. 다만 금리 격차는 점차 줄어드는 모양새를 보였다.

하지만 미국 10년물 국채의 금리가 지금보다 더 내려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RBC 웰스매니지먼트의 한 금리 전문가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1.32%까지 내려갈 가능성을 거론했다.

장기 국채의 금리 하락 현상은 유럽에서도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났고 독일에서는 10년물 국채의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한국 채권시장도 유사한 상황을 나타냈다. 최근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의 금리차가 11년 만에 가장 작은 폭으로 좁혀진 것이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종가 기준 국고채 금리는 3년물이 연 1.150%, 10년물이 연 1.229%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과 금값 상승 등도 경기 침체 우려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장기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 등 제반 상황들이 맞물려 세계적 경기 침체기 도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금리 역전 현상을 경기 침체의 전조로 해석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우선 금리 역전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 나타났을 만큼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1978년 이래 등장한 다섯 차례의 금리 역전은 모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2007년에 나타난 채권금리 역전은 특별한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그 이듬해에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적 금융위기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상황을 세계적 경기 침체 전조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적지 않게 제시되고 있다. 특히 이번만은 과거 사례와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게 제기된다.

지나친 공포감 조성을 비판하는 이들은 최근의 채권 금리 역전이 조만간의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우선 과거에도 금리 역전이 일어난지 1년 반 또는 2년이 지나서야 경기 침체가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대론자 중엔 이번 금리 역전은 과거와 다른 케이스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채권 금리 역전 현상이 반드시 경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게 논리적 배경이다.

SK증권의 안영진 연구원은 이번의 금리 역전이 경기침체의 신호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와는 다른 변수들이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가 지목한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양적완화 방식이었다. 즉, 연준이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국채 매입을 통해 양적완화를 시도했고, 그로 인해 시장금리 하락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준이 최근 의도적으로 단기채를 팔고 장기채를 매수함에 따라 장단기 국채 금리가 비슷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근거로 안 연구원은 이번엔 금리 역전 이후 경기 침체가 나타나는 시점도 과거 사례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미국에서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자 우리 금융위원회는 16일 손병두 부위원장 주재로 시장점검회의를 열고 상황을 분석했다. 손 부위원장은 비상계획을 재점검하고 유사시 시장을 조속히 안정시킬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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