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난 19일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 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의 한국행 수출을 허용했다. 이달 초에 이어 두 번째로 취해진 수출 승인이다. 이번 수출 물량은 1차 승인분의 두 배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물건을 수입할 한국 기업은 이번에도 삼성전자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약 9개월 분의 포토레지스트를 확보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이번 조치를 두고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대체적인 시각은 ‘아직은’이라는 쪽으로 모아져 있다. 이번 조치를 규제 완화 의도의 표현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우리 정부나 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정부는 여전히 대일(對日) 스탠스를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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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단 일본의 수출관리령 개정안이 발효되는 오는 28일을 중요한 고비로 보고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앞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나 막판까지 연막을 치는 것도 그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최대한 전략 노출을 삼가면서 지소미아 카드가 지닌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업계는 왜 일본의 연이은 수출 허가 조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수출 허가 조치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우선 일본이 연이어 수출 허가를 내준 소재가 포토레지스트로 국한돼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지난 달 4일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는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이다.

이중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디스플레이 제조에, 에칭가스로도 불리는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소재들이다.

이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품목은 고순도 불화수소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가하면서 표면적으로 들이댄 이유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품목인 탓이다. 일본은 한국이 전략물자를 수입한 뒤 일부를 북한 등으로 유출한다는 억지 주장을 기정사실인 양 공언했다. 그리고는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이유로 세 가지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이때 일본이 북한 등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한 품목이 고순도 불화수소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 공정상 기판을 세척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불화수소는 용도가 다양한데다 심지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도 있는 소재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뜨거운 이슈가 된 핵미사일의 제조에도 이 물질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반면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제조용 기판 위에 회로 그림을 그리기 전 얇게 바르는 물질로서 군사 전용 우려가 없는 품목이다.

이를 종합하면 일본 정부가 왜 반도체 소재 중 고순도 불화수소를 제외한 채 포토레지스트만 골라 수출 승인을 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 정말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완화할 의지가 있는지를 판단할 기준은 고순도 불화수소의 수출 허가 여부다. 해당 물질에 대한 수출 허가가 이뤄진다면 그때 가서야 일본의 의도를 조금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수출 규제가 안보상 이유로 이뤄지고 있다는 명분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제스처로 해석할 수 있다. 스스로 내세운 명분에도 맞지 않는 품목을 계속 규제 대상으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화이트국가에서 배제된 한국이 그 다음 단계인 B그룹에 속해 있다는 점도 일본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B그룹엔 한국 홀로 들어가 있다. 오직 한국을 강등시킬 하나의 목적으로 만든 그룹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 등 C그룹 국가들에도 별 제약 없이 수출하는 물품을 한국에만 팔지 못하게 막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다.

아직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해소할 기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승인이 끝내 이뤄지지 않을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해법은 일본 기업으로부터의 우회 수입과 수입원 다변화 등이다. 소재를 자급하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제조사들은 생산 공정 사용에 대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칭가스 등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도 자국 정부의 수출 규제로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자 우회적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해외 공장을 통해 한국으로 물품을 수출하는 길을 찾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공장을 해외에 지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가 자칫 자충수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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