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몰고올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이를 두고 갖가지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 발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는 한 목소리로 “실망”이란 표현을 구사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실망했다”란 발언은 그러지 않아도 우리 내부에 엎드려 있던 우려와 불안을 한 번 더 자극했다. 우방 외교 당국자의 언어 치고는 상당히 강도 높은 표현이라 할 수 있어서이다.

미국의 이 같은 반응은 안보상의 한·미·일 3각 공조체제가 약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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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은 지리적으로는 근린이지만 해묵은 갈등으로 인해 동맹관계를 맺기 힘든 나라들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독일 수준, 또는 그에 준하는 정도의 반성을 표하지 않는 한 동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로서는 두 나라 모두 숙명적으로 미국을 매개로 공조체제를 이루는 외교안보 전략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지소미아 종료로 삼각 공조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파기’ 대신 ‘종료’라는 표현을 고집함으로써 행위의 주체를 우리로 규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쨌든 지소미아를 인위적으로 무력화시킨 측은 우리다. 미국의 반응도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청와대의 결정은 나름 논리를 갖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 그룹에서 배제함으로써 안보상 우호국이 아님을 명확히 한 마당에 안보 공조 시스템을 가동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치상으론 상대가 우리를 적으로 취급하는데 우리만 일본을 친구로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논리만 따지기엔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는 점이다. 억지일망정 일본의 행동이나 주장, 그것들을 은근히 지지하는 듯한 미국의 자세는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압박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청와대의 조치 발표 이후 국민 다수는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속이 후련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일면서 개운치 않은 느낌을 가진 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청와대가 카드를 너무 성급히 꺼내들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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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은 안보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이슈와 맞물린 이번 사태로 산업계는 국내 분위기상 크게 불만도 못 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자본시장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강대 강 국면이 보다 견고해지고 장기화되면서 불확실성이 확대 재생산될 것이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체적인 목소리는 두 나라가 맞대응을 주고받는 일이 반복되는데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는 데 모아져있다.

신한금융투자는 23일 보고서를 통해 강대 강 대결의 반복을 우려하면서 주식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할 맞대응 카드로는 수출규제 품목 확대, 보복 관세 부과, 자국내 한국 기업의 자산 압류 등을 지목했다.

그간 산업계에선 일본이 한국에 대해 일반포괄허가를 불허하기로 했지만 당분간만 개별허가제를 적용하다가 특별일반포괄허가로 전환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일본도 하위 법령인 ‘통달’(포괄허가 취급요령)을 통해 그럴 여지를 남겨두었다.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은 일본 기업이 한국으로 수출할 때는 사실상 포괄허가를 허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가 몰고온 불안감은 안보와 경제 영역 모두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제부터 정부가 할 일은 불안감을 다독일 방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상대가 있는 싸움이니 모든 카드를 다 내보일 수 없다면 적어도 한·미 동맹 만큼은 굳건히 유지되리라는 믿음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2인3각처럼 불편한 행보이긴 해도 한·일 두 나라가 미국을 매개로 간접공조를 취하려는 가시적 노력을 펼침으로써 안보 불안 심리를 달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평화가 경제다’보다 ‘안보가 경제다’라는 슬로건이 더 어울리는 시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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