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심 결정이 대법원에 의해 파기돼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요지는 이 부회장에 대한 2심의 뇌물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 관련 재판의 핵심 쟁점은 그에게 적용될 뇌물 액수를 얼마로 보아야 하느냐였다. 이 주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씨 관련 재판과도 연결돼 있다. 하지만 세 사람 중심의 국정농단 사건을 다룬 1, 2심 재판에선 같은 주제에 대한 판단이 일치되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테면 최순실씨 사건을 맡은 2심 재판부는 그가 재단 설립 출연금을 요구한 것에 대해 협박에 의한 강요죄가 성립된다고 보았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강요죄 성립 요건인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최씨가 협박에 의해 출연금을 거뒀다면 돈을 지원한 삼성은 뇌물 혐의를 벗어야 하는 게 논리적이다. 돈을 사실상 강탈했다고 볼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2심 재판부가 정유라씨 훈련용 말 세 필의 소유권자를 최순실씨로 인정했으나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는 최씨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점도 대법에 의해 정리됐다. 대법은 말 소유권을 최순실씨로 통일해 정리했다. 소유권이 삼성이 아닌 최씨에게 있다면 이 부회장에겐 뇌물죄가 성립된다. 반대로 삼성 소유가 인정된다면 뇌물죄는 원천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준 게 아니니 뇌물죄가 성립될 논리적 근거가 없어진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부회장 재판에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과 관련해서도 2심 재판부의 엇갈린 결정을 하나로 정리했다. 후원금에 삼성의 승계 현안이 관련됐고, 결과적으로 뇌물죄가 성립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번 대법의 판결은 법리 적용상의 오류를 주로 들여다 보아온 관례대로 사건 전반을 다시 정리하면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2심 재판부의 혼란스러운 결정을 정리하는데 치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 액수를 기존의 36억여원이 아닌 86억여원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2심에서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3000만원에 대해서만 뇌물죄를 인정받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음으로써 수감생활을 면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정유라씨가 승마 훈련을 위해 쓴 말 세필의 가격 34억여원과 최순실씨가 주도해 만든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금 16억여원도 뇌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를 지적하며 사건을 다시 2심 재판부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만약 대법원의 판단이 고법의 파기환송심에 그대로 반영된다면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50억원을 넘게 됨에 따라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뇌물액 50억 이상이면 징역 5년형 이상을 받을 수 있고, 집행유예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점이 삼성을 긴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이렇게 되면 삼성은 한동안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한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야 한다. 당연히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작업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삼성이나 재계를 넘어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에게 불행하고 참담한 일이지만 대법 결정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권력의 위세에 눌려 돈을 내놓았다 하더라도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지 않으면 죄가 될 수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더는 묵시적 청탁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기업뿐 아니라 권력을 가진 정부도 중요한 메시지 전달 대상이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번 판결이 취지와 달리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재벌에 대한 적대감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할 가능성이다. 그러지 않아도 한·미 갈등에 더한 일본의 경제적 압박으로 우리 기업들은 지금 숨쉴 틈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은 특히나 더 그렇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건 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다스 소송비용 대납 의혹 등으로 인해 진작부터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이들 사건은 제각각 경우는 다르지만 한결같이 삼성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게 사실이다.

일부 외신이 지적했듯이 대법 판결로 경제적 불확실성에 법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은 현재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므로 위법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번 판결을 재벌·대기업을 적대시하는 불쏘시개로 삼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특히 정치권의 주의가 필요하다. 정치적 목적으로 대기업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대법원 판결 본래의 의도조차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 재벌·대기업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생산과 수출, 고용을 상당 부분 책임져주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