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출관리를 목적으로 작성한 백색국가 명단에서 일본이 곧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이달 중 위의 내용을 담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가 시행에 들어간다.

개정된 고시는 28개 국가가 포함된 ‘가’ 그룹을 ‘가의 1’과 ‘가의 2’로 나눈 뒤 일본을 ‘가의 2’ 그룹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그룹에서 제외한 뒤 별도로 B그룹에 포함시킨 것과 비슷한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수출입 관리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고시 개정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를 지난 3일 마감했다. 일본의 카운터파트인 경제산업성(경산성)은 마감 당일 의견서를 보내왔다. 산업부는 4일 공식SNS를 통해 그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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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산성은 먼저 자신들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도 없이 일이 추진됐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어 “근거 없는 자의적 보복 조치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견서는 이와 함께 고시 개정 사유, 캐치올 규제 등 한국의 수출통제제도 등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산업부가 SNS에 올린 글은 일본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고시 개정은 수출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서 결코 보복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7월 초 일본 경산성이 수출관리령 개정 방침을 밝히면서 내놓았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되받아쳐 넘긴 셈이다.

산업부는 고시 시행을 강행할 기세를 드러내고 있다. 의견 수렴 절차가 끝난 만큼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 등의 과정을 거쳐 이달 안에 새로운 고시의 시행에 들어간다는 것이 산업부 방침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나와 주목된다. 주장의 당사자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였다.

의견서를 통한 그의 제언은 국제기구를 통해 일본과 명분 싸움을 벌이려면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닥치고 공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배하는 청와대와 정부에 스스로를 성찰할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의견서에서 송 변호사는 산업부의 조치가 자칫 무역 보복조치로 비쳐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한 뒤 이어질 다툼 과정에서 우리가 명분상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WTO 협정은 제한적 범위에서의 대응을 허용할 뿐 그 밖의 일방적 보복조치를 금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이상의 내용들을 담은 의견서를 지난 1일 정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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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변호사는 개정 고시 시행이 한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금속·전기전자 부품 등을 생산하는 우리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중소기업들은 수출관리와 관련한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인증을 받은 경우가 적어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견해를 빌리자면, 수출 규모로 보아도 일본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리의 일본에 대한 수출 규모는 305억 달러였다. 일본의 전체 수입 규모 7500억 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다. 우리가 수출규제를 해도 일본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송 변호사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한국이 WTO에 제소하면서 백색국가 제외 부분을 빼고 에칭가스 등 일본의 3대 소재 수출규제만 문제 삼게 되는 경우다. 이는 우리의 개정 고시 시행으로 백색국가 이슈가 역풍을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해 이 문제를 논외로 삼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송 변호사에 의하면 그럴 경우 일본은 특정 품목에 한해 개별허가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방어할 수 있게 되고, 그 같은 조치는 자국 정부의 재량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이유들로 송 변호사는 우리 정부의 개정 고시에서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삭제하자고 권고했다. 개정 고시 시행을 연기하고 공청회를 열 것을 권하는 내용도 의견서에 첨부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공청회 개최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일본 정부가 대화를 원한다면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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