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신용도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인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5년 1051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급속히 하락하는 모양새를 띠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연도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6년 979억 달러로 약간 꺾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그 이듬해부터 800억 달러 아래로 크게 내려앉았다. 2017년과 2018년의 경상수지는 각각 752억 달러와 764억 달러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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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정부는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600억 달러는 넘을 것이라 장담했다. 지난 5월 월별 경상수지가 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6억6000만 달러)를 기록한 뒤 우려가 쏟아지자 정부와 한은은 입을 모아 그 같은 장담을 내놓았다. 5월 기록이 나빴던 건 기업들의 배당금 지출 등 계절적 요인이 작용한 탓이라며 내놓은 전망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그 정도 목표를 달성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부정적 예감은 올해 상반기 집계치가 발표됐을 때부터 일찌감치 느껴졌다. 올해 상반기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 액수는 217억7000만 달러에 그쳤다. 하반기에 크게 느는 경향이 있다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상반기 실적은 실망스러울 정도다. 전년 동기에 비해 24.7%(71억3000만원)나 줄어든 탓이다.

절대 액수로만 보면 우리의 경상수지는 아직은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할 때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세계은행이 밝힌 우리의 지난해 GDP 규모가 1조6194억 달러(세계 12위)였으니 그 비율은 4.7%라는 계산이 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이 외화자금 이탈을 자극할 수 있는 수치로 제시하는 위험선이 2% 언저리임을 감안하면 위험 수준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문제는 흐름이다. 우리 경상수지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2015년 이후 주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800억 달러에 육박하는 흑자를 기록하며 외환보유고를 든든히 받쳐주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올들어 유턴하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한 계단 내려앉을 것이 확실시되면서 내리막 흐름을 형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같은 우려의 배경엔 경상수지의 핵심을 이루는 상품수지의 부진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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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은행 집계 자료는 우리의 수출 상황이 상당히 부정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당월 경상수지는 69억5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월별 액수로는 양호한 듯 보이지만 내면은 딴판이다.

만약 이 같은 경상 실적이 수출 호조에 의한 상품수지 흑자 확대로 나타났다면 희망적 결과로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이는 기업들의 투자소득 등을 포함한 본원소득수지가 크게 개선된데 따른 것이다. 7월 본원소득수지는 지난해 동월 대비로는 두 배, 역대 기록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처럼 본원소득수지가 개선된 것은 경기 부진과 원화 가치 하락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 재투자 대신 수익을 외화로 현금화한 뒤 국내로 들여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경상수지의 중심축이면서 확실한 버팀목인 상품수지의 경우 흑자폭이 작년 같은 달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수입이 동반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수출이 엄청나게 큰 폭으로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7월 상품수지는 61억9000만 달러의 흑자를 내는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달의 상품수지 흑자는 107억9000만 달러였다.

7월 수출·입 규모는 각각 482억6000만 달러와 420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작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각각 -10.9%와 -3%였다. 특히 심각한 점은 우리 경제에서 효자 역할을 해온 수출이 8개월 연속 감소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입 감소가 이어진 기간은 3개월이다.

대외 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경기가 침체되고 있고 반도체 경기의 회복마저 기대보다 더디게 이뤄짐에 따라 수출은 당분간 좋아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덩달아 경상수지 흑자 폭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경상수지가 흑자폭을 키워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 흑자폭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더 위험하다. 우리에겐 경상수지의 누적 상황이 좋지 않았던 까닭에 1990년 후반 국제통화기금(IMF)에 우리의 경제주권을 넘겨야 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경상수지 악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흑자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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