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 ‘D의 공포’에 이어 이번엔 ‘M의 공포’가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앞의 두 개념은 각각 경기침체(Recession)와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용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새롭게 부상한 것이 ‘M의 공포’다.

‘M의 공포’의 ‘M’은 마이너스(Minus)의 이니셜이다. ‘M의 공포’ 즉, 마이너스에 대한 공포는 경제관련 주요 지표들이 마이너스를 나타낼지 모른다는데 대한 공포감을 가리킨다. 따라서 ‘M의 공포’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개념은 아니다.

이를테면 ‘D의 공포’도 ‘M의 공포’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디플레이션이 물가가 장기간에 걸쳐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는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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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서 ‘M의 공포’가 나타날 수 있는 부문은 한 두 곳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채권 금리, 성장률 등등이 모두 ‘M의 공포’가 나타날 수 있는 부문들이다.

‘M의 공포’란 말이 요즘 들어 갑자기 회자되는 계기가 된 것은 얼마 전 미국에서 나타난 장단기 금리 역전이다. 이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기가 침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경기 부진은 ‘R의 공포’를 자극했고 연이어 ‘M의 공포’를 불렀다. 이는 경기가 좋을 때는 나타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일들이다.

현재 ‘M의 공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부문이 기준금리다. 유럽 각국과 일본에서는 기준금리가 상당 기간 동안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경제가 활력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일본은 중앙은행의 연 기준금리를 -0.10%로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의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고 있다. 유로존 전체를 대표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마이너스 금리 목전인 0%의 기준금리를 설정해 두고 있다.

‘M의 공포’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번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는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많이 보고 있다”며 미국도 그렇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그 근거로 인구 고령화를 지목했다. 고령자 증가가 채권 투자 수요를 자극하고, 그 결과 채권 가격이 오르면서(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금리도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발언 요지였다. 채권 금리는 채권 가격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는 최장기물인 30년 짜리 미국 국채 금리의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미국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장벽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 30년물 미국 국채의 연간 금리는 1.9% 선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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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 경제도 마이너스 금리를 요구할 정도로 침체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아직은 양호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경제는 상대적으로 더 심각한 활력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자주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그 같은 우려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였다. 발표 내용에 의하면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0.038% 하락했다. 전년 동월 대비 월별 소비자물가의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월별 소비자물가 통계치가 8개월 연속 0%대 증가율을 기록한 끝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가 디플레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의 경우 디플레 우려가 높아졌다는 진단과 함께 한국은행이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분석했다. 통화정책을 다룰 10월 금통위 회의는 17일 열린다.

디플레 및 그와 맞물린 금리인하에 대한 전망은 우리 경제의 각 부문에서 마이너스 기록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와 연관돼 있다. 이 역시 ‘M의 공포’란 말로 설명될 수 있다. 디플레로 인해 소비가 줄고, 연이어 생산과 투자, 고용, 근로자들의 소득, 자산가치 등이 줄줄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성장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십상이다.

결국 ‘M의 공포’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라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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