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과연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요즘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는 최대 의문 사항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함으로써 확립됐다. 정부는 이 제도 확립을 위해 주택법 시행령 중 관련 내용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손질했다. 이로 인해 서울 전역과 수도권 등 지방의 일부 지역이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들 지역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제도를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체적 적용 대상과 시점은 주택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지만 시장은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주정심 논의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2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위원장인 국토교통부 장관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마련이다. 일부 민간 위원들이 참여하지만 장·차관에 관련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포함하는 당연직이 14명이나 된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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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분양가 상한제의 구체적 적용 대상과 시점은 주정심 심의로 정하되 일단 오는 10월부터 제도 시행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시장이 이상 반응을 보이며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

당장 홍남기 경제부총리부터가 10월 초에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아니라며 불끄기에 나섰다. 시장의 과민 반응을 가라앉히려는 게 목적인 듯 보였다.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점도 홍 부총리로 하여금 속도 조절에 나서게 한 요인인 듯 보인다.

소비와 투자, 수출 등이 두루 부진을 보이며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특히 건설경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경제동향 9월호에 따르면 지난 7월 건설기성(시공 기준 실적)과 건설수주는 전년 동월에 비해 각각 6.2%, 23.3% 감소했다.

건설경기 부진은 주로 주택 부문의 수주 실적 저하에 기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민간택지 아파트로 확대 적용되면 주택 재정비 사업이 지연 또는 최소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건설업체들의 주택 건설 수주 감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또 신축 아파트 품귀로 이어진다는 게 다수의 시각이다. 품귀는 시장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신축 아파트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오르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의미다.

그뿐이 아니다. 제도 확정 이후 관리처분인가에 이어 이주까지 마친 재건축단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놓였다. 기존 법제를 믿고 사업을 추진했다가 새 제도의 소급적용으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정부는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제도 적용 대상을 ‘최초 입주자 모집 승인 신청 단지’로 확대했다. 이로써 관리처분인가를 마친 단지들에까지 분양가 상한제가 소급적용될 길이 열렸다. 이는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논란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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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주택 재정비 사업을 추진중인 사람들이 억울하게 재산권을 침해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주택 재정비 사업을 위해 자기 땅을 내놓은 이들은 당장 일반분양에 응하는 이들보다 비싼 값을 치르고 새 주택을 갖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반 분양분에 한해 토지가격을 공시가 기준으로 매기다 보니 생기는 비정상적 현상이다. 재산권 침해는 새로운 제도의 소급적용에 의해서도 이뤄질 판이다.

이 모두가 단 한 사람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돼야 할 법규가 무자비하게 만들어지고 시행되면서 벌어지게 된 일들이다. 이 같은 부작용들은 자연스레 새로운 제도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반발이 확산되면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될 수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가는 판국에 무리하게 제도를 밀어붙임으로써 시장에 혼란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기엔 정부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반발은 주로 재건축·재개발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일 42개 재건축·재개발 조합 구성원 1만2000여명이 서울 세종로공원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정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탈하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관리처분인가 단계를 이미 거쳐간 재건축 조합원들은 상한제 소급 적용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소급 입법 폐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사유재산 침해와 함께 현금 부자들에게 더 많은 부를 안겨줄 수 있다는 주장도 함께 펼쳤다. 이 같은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다수의 참가자들은 ‘현금부자 로또, 조합원 쪽박’ 등의 손팻말을 들며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서민 주거안정은 사유재산 ‘침탈’이 아니라 공적 자금 투입과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통해 해결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또 △관리처분 인가를 마친 재건축 단지를 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것 △최악의 경우 2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둘 것 등을 요구했다. 제도 철회를 요구하면서도 굳이 시행하려면 개인의 재산권 침해 요소를 최대한 없애라는 것이었다.

시위 참가자 일부는 행사가 끝난 늦은 저녁 무렵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다.

정치권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아예 시행령보다 상위에 있는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정부가 마음대로 반(反)시장적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자유한국당 이혜훈 의원과 박성중 의원이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 의원은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 아파트에 적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다. 박 의원 또한 비슷한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를 유지하되 적용 대상을 공공택지에 짓거나 공공자금을 지원받아 짓는 아파트로 제한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정치권 내외에서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독불장군식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제도가 시행도 하기 전에 잡음만 일으킨 채 좌초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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