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3개 축을 중심으로 짜여진 경제정책은 지난 2년여 동안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비판이 가해지면 질수록 현 정부의 정책 추진 의지는 더욱 확고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오기의 발현이 아닌가 싶다.

현 정부의 완고함은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수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용 상황이 양과 질 모두에서 개선되고 있다”고 말하며 지금의 경제정책 기조를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되어온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피드백 효과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부작용을 키우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많다. 역대 정권의 경제정책 치고 야당의 비판을 받지 않은 것은 없었다. 이념과 관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구체적으로는 성장과 분배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실을지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비판을 정치적 공격으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개중엔 합리적인 비판도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책이든 흠결은 있기 마련이므로 비판이 거듭되면 조금씩 바뀌는 게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2기 경제팀을 이끌었던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한동안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다가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에 밀려 흐지부지 끝을 흐렸던 것이 좋은 사례다. 물론 당시의 비판론엔 정치적 색채가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일부 보수 언론은 최 부총리의 경제정책이 분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보수 정권의 경제정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 시절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 정부와는 정치 이념이 다르니 그 부작용이 지금처럼 도드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좀 더 빨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교훈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유야무야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소득주도성장 실험이 끝났더라면 더 좋았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정책에 대한 비판 중 옥석을 가리고, 건강한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고한 입장을 보인다면 문제는 갈수록 커지게 된다. 소득주도성장이 몰고 온 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자들의 몰락, 공정경제 정책의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규제의 양산 등이 대표적 부작용들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를 종합적으로 뭉뚱그린 듯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한 칼럼니스트의 글을 통해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부패한 재벌이나 관료보다 ‘강남좌파’가 더 나쁘다며 내놓은 강한 비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강남좌파’는 현 정부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을 가리킨다. 통신은 이들로 인해 한국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커졌고, 결과적으로 기업 투자가 줄어들고 한국 주식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문재인 정부의 ‘사회주의 정책’을 비판했지만 문제는 그마저도 제대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찾아진다. 분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정작 정책의 부작용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생활이 이전보다도 팍팍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근한 예가 통계청이 내놓은 올해 2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 보고서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은 1년 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2분기 기준 1분위 가구의 월 평균 근로소득은 43만8700원에 불과했다. 이들이 주로 의존하는 것은 이전소득으로, 그 액수가 월 평균 65만2100원에 달했다.

이전소득은 불로소득으로서 정부나 친·인척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소득을 지칭한다. 대체로 낮은 분위의 가구일수록 이전소득이 높게 나타난다. 이전소득의 내용도 분위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1분위 가구의 경우 이전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부 지원금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1분위 가구는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가운데 정부 지원에 기대 생계를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2분기 기준 1분위 가구 근로소득은 지난해 51만8000원보다 15.3%나 감소했다. 반면 이전소득은 지난해의 59만4700원보다 6만원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저소득 사람들이 고용에 심각한 애로를 겪고 있거나 질 낮은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고용 사정이 안 좋다는 것은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년 동월 대비 일자리 증가폭이 45만을 넘겼다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늘어난 일자리중 60세 이상 일자리가 39만1000개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50대 일자리 증가폭이 13만3000개에 이르렀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 이하 연령대의 일자리는 오히려 1년 전보다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60세 이상 일자리가 대개 정부 지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한편 단시간, 단기 성격을 띤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일자리의 질이 얼마나 나빠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제조업과 금융·보험업에서 모두 6만9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점, 반대로 단시간 단기 일자리가 많이 포함되는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17만4000명)과 숙박·음식점업(+10만4000명)에서 고용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 등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 정도면 8월 고용동향을 두고 고용상황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고용 상황이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으니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과연 문 대통령이 경제현황에 대해 제대로 보고를 받고 있는가’이다. 정책 담당자들이 실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진단 없이 단순히 ‘일자리 45만개 증가’ 등 표면적 성과만 거두절미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문 대통령이 정확한 진단 내용까지 보고받고도 위의 수보회의 모두발언을 내놓았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문제 핵심이 ‘분식 보고’에서 대통령의 현실인식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든지 간에 최소한 경제문제 만큼은 진영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치만능, 이념과잉도 좋지만 적어도 경제정책을 논하고 성과를 진단하는 일에 있어서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치 이슈야 관심을 안 두면 그만이지만 경제는 그 자체가 먹고사는 문제라서 그럴 수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