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망이 하루도 못 버티고 뚫린 것일까?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경기도 연천에서도 발생했다. 인근 파주에서 확진 판정이 내려진 뒤 하루 만에 같은 질병에 감염된 돼지가 연천의 돼지농가에서도 발견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연천 농가의 경우 사육중인 4700여 마리의 돼지 중 한 마리가 지난 17일 이상증세를 보이다 죽자 곧바로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이후 경기도 가축방역관이 당일 현장으로 가 시료를 채취한 뒤 농림축산검역본부로 보냈고, 검사 결과 이튿날인 18일 ASF 확진 판정이 내려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파주에 이어 연천에서도 ASF 발병이 확인되자 정부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초동 대처에 만전을 기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던 계획이 불과 하루 만에 무산된 탓이다. 18일 현재까지 정부 당국은 파주·연천 돼지농가에서 발병한 ASF의 발병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연천 농가에서의 발병이 파주 농가로부터 감염돼 이뤄진 것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두 농가가 역학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것도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 두 농가가 역학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각각의 개별 경로를 통해 질병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갔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파주와 연천의 두 농가는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파주는 물론 그곳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 위치한 연천은 모두 북한 접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한으로 이어지는 하천 줄기와 인접해 있다는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임진강 수계와 2㎞ 내외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파주 농가의 ASF가 처음 발병했을 때부터 바이러스가 북한으로부터 유입됐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지리적으로 볼 땐 연천의 농가도 북한으로부터 유입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농장이 갖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네팔 노동자들을 복수로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주 농장엔 4명의 네팔인이, 연천 농장엔 4명의 네팔인과 1명의 스리랑카인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들로부터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네팔이나 스리랑카 모두 ASF 발병국이 아닌데다 이들 노동자들 누구도 5월 이후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농장의 농장주도 최근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

파주 돼지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파주 돼지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돼지들에게 잔반을 먹이지 않고 사료만 제공했다는 것도 두 농장의 공통점이다. 이는 곧 먹이를 통해 돼지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작음을 의미한다. 경기도는 일단 사료에 의한 감염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사료가 열처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다만, 사료 운반 차량이 바이러스를 묻혀왔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러나 두 농장의 경우 그럴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농장을 동시에 다녀간 차량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파주 농장을 통해 연천 농장으로 바이러스가 이동해갔을 가능성은 일단 낮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선우선정 건국대 수의학과 겸임교수는 지난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를 하면서 ASF의 전염 속도가 구제역에 비해 느리다고 전제한 뒤 ASF 바이러스는 돼지와 직접 접촉해야 감염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구제역 등에 비해 ASF 바이러스의 전염 차단이 쉬울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공기 전염이 가능한 구제역과 달리 직접 접촉시 옮겨지는 분비물 등에 의해서만 감염된다면 전파 속도가 느린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바이러스 질환은 세균성 질환에 비해 전파력이 강하다. 바이러스가 세균에 비해 크기가 작다는 점이 주된 이유다. 정밀한 전자현미경으로만 관찰이 가능한 바이러스는 작은 만큼 공기에 떠다니며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세균성 질환인 감기와 달리 바이러스성 질환인 독감이 훨씬 쉽고 빠르게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치 탓이다.

ASF는 바이러스성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침이나 분뇨 등 돼지의 분비물을 접촉할 경우에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나 차량이 바이러스를 외부에서 묻혀와 돼지에게 옮길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특성 등을 종합할 때 파주와 연천에서 발생한 ASF는 북한에서 야생 멧돼지를 통해 유입됐을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에서 태풍으로 인한 홍수가 발생했다는 점도 야생 멧돼지의 민가 접근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북한에서는 지난 5월 ASF가 처음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ASF는 현재 중국, 홍콩,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과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등 유럽 곳곳에서 유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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