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모처럼 칭찬받을 일을 하나 했다. 황교안 대표가 주창한 ‘민부론(民富論)’ 덕분이다. 그 동안 황 대표는 제1 야당 대표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 채 웰빙 정당의 생리상 잘 어울리지도 않는 어설픈 장외 투쟁에 몰두해왔다. 그 같은 행보를 두고 원외 대표가 지니는 한계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원내 입지가 없다고 해서 제1 야당 대표의 자리가 호락호락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전과는 다르다지만 당직 인선과 사무국 운영은 물론 공천 등을 통해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가 당 대표다. 특히 공천을 포함하는 인사권은 당 대표의 위상을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무기라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는 이렇다 할 혁신 의지를 드러내지 않은 채 당내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려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를 설계할 대안도, 확실한 개혁 의지도 없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이유였다. 심지어 행동거지가 정치 초년생 치고도 너무나 서툰데다 협량하다는 혹평까지 들어온 황 대표였다. 그 바람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앞으로도 주욱~ 한국당 대표를 맡아달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그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복은 있다’라는 뼈있는 농담도 심심찮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제대로 한 건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부론’이란 대안 정책을 제시하면서 여야 간 건강한 정책대결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민부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이름이다. ‘국부론’이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방법을 상술한 이론서라면 ‘민부론’은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취지가 담긴 황교안표 경제정책이라 할 수 있다.

‘민부론’이란 네이밍부터가 그럴 듯했다. ‘국부론’의 명성 덕에 기억하기 쉽고, 국민들이 공감하기 쉬운 어휘라는 평을 들을 만한 표현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을 대거 탄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경제가 날로 어려워져가고 있는 지금 국민 각자에게 더더욱 쉽게 어필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민부론’은 경제정책 운용을 지금의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는 것을 주된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가구당 연 소득 1억원, 중산층 70% 확보 등을 이루겠다는 게 이 이론의 주요 정책목표다.

내용을 논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한국당이 비로소 굵직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간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실패작으로 몰아붙이는 데만 집중해왔다. 한국당이 대안은 없고 비판을 위한 비판만 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가장 큰 이유다. 그 결과 정권을 책임질 대안 정당, 즉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에 대해 많은 이들은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이는 민주당 지지도가 크게 떨어져도 한국당 지지도는 별로 변하지 않는 기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온 ‘민부론’이니 적지 않은 정치전문가들이 모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민부론’의 내용을 두고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충분히 예견됐던,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민부론’을 둘러싼 논쟁이 건강한 정책 대결을 부르고,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 제1 야당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교평가가 이뤄진다면 우리 정치는 한결 성숙한 단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치가 그러하니 한국당은 정치 이념이 다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으로부터 나오는 원색적인 비판에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책을 둘러싼 여당의 비판엔 자료를 통한 합리적 근거를 앞세워 점잖게 대항논리로 맞서면 그만이다. 어차피 선택은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여야의 정책 대결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진영논리를 넘어 합리적 선택을 유도할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바람직스럽다. ‘민부론’에 대한 건강한 논쟁이 벌어진다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과 공정경제, 혁신성장 정책 등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도 가능해진다. 소주성을 두고 진보진영은 무조건 찬성을, 보수진영은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것은 국익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심각한 해악을 가져다줄 뿐이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진영논리는 옳고 그름, 합리와 비합리에 대한 판단을 마비시키는 원흉이다.

이미 달아오르기 시작한 여야 간 경제정책 논쟁은 20대 총선 직전 상황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당시 새누리당(지금의 한국당)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치열한 정책 대결을 펼친 바 있다. 논쟁의 주된 주제는 강 위원장이 제시한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이었다.

정책이 현실화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두 경제전문가의 입담 대결은 거대 정당 간의 건강한 정책 대결을 유발함으로써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이번의 ‘민부론’ 논란은 더욱 흥미진진한 요소를 안고 있다. ‘민부론’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건강한 정책 대결이 이뤄지려면 여당의 자세부터 가다듬어져야 한다. ‘민부론’이 발표된 당일부터 대뜸 ‘줄푸세의 환생’이니 ‘관심끌기용’이니 하며 비난부터 퍼붓는 것은 당당하지 못한 자세다. 내용부터 꼼꼼히 살펴본 뒤 취할 게 있으면 취하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으면 합리적 비판을 가하는 것이 집권 여당다운 자세라 할 수 있다. ‘민부론’ 제언이 추락할대로 추락한 한국 정치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