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의 최대 논란거리였던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일부 손질된다.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던 당초 방침에서 한발 물러나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를 지난 주택재정비사업 단지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1일 ‘최근 부동산시장 점검 결과 및 보완방안’을 발표하고, 이미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를 거친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단지에 대해서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6개월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에 따라 해당 단지들은 추후 해당 지역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더라도 6개월 안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마치면 상한제 적용을 면하게 된다. 구체적 면제 대상 단지들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마치고 이주에 돌입했거나 철거에 들어간 곳들이다. 현재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를 넘긴 재건축·재개발 단지와 여기에 들어설 아파트 가구수는 서울에서만 61개 단지, 6만8000여 가구에 이른다.

관리처분계획은 평형별 가구수를 어떻게 정해 아파트를 지을지 등의 건설계획은 물론 철거와 분양계획 등을 망라한다. 조합원 분양 이외의 일반분양분에 대한 분양가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계획이 모두 포함되는 만큼 이 계획이 인가되고 나면 조합원들은 비로소 수익성 등을 산출할 수 있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단지의 조합원들은 이를 토대로 자금 계획을 세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정부는 앞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을 통해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을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지로까지 넓히기로 했었다. 시행령 개정안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특정 지역에서 시행되면 그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 신청을 하는 단지에도 상한제를 적용토록 하고 있다. 이전에는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를 거친 단지엔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를 밀어붙일 요량으로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입법예고 등의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해왔다. 그렇다면 그토록 완고하게 이번 일을 밀어붙여온 정부가 갑자기 제도 손질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그중 첫째가 조합원들의 극렬한 반발이었다. 주택재정비사업 조합원들은 시내 한복판에 모여 집단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제도가 시행되면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었다. 이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초법적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앞세워 월권을 행사하려 한다며 맞서왔다. 재개발·재건축을 위해 이미 이주를 마쳤거나 석면제거 공사에 들어간 곳, 철거에 돌입한 곳의 주민들은 일을 되돌리지도 못한 채 무작정 사업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금 부담이 늘어나 사업을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집이 철거된 터라 돌아갈 곳도 없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난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둘째 이유는 소급입법 논란이었다. 주택재정비사업 조합의 조합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법률 전문가들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무차별 적용이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부작용은 진작부터 나타났다. 기존 법령을 믿고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마친 뒤 이주 또는 철거를 마친 주택재정비조합 구성원들은 갑자기 시행령이 바뀌는 바람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재산권을 침해당하는 억울한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국토부가 ‘미실현 이익’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을 무시한 억지 주장이라는 비판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경우 해당 주택조합 조합원들이 위헌소송에 나서리란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세 번째 이유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 흐름이 정부 의도와 다른 방향을 향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부가 큰소리쳤던 것과 달리 제도 시행이 임박해올수록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들썩이는 모습을 보였다. 주택재정비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신축 아파트 품귀를 예상한 사람들이 새 아파트 구매에 대거 나선 것이 원인이었다.

이로써 신축 아파트 매매가가 급등했고, 그 파장은 구축 아파트와 재건축 아파트 등으로 다시 옮겨지기 시작했다. 시장가격을 정부가 억지로 통제하니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 원인이었다. 이를 두고 고전적 경제학 원리를 무시한 정책이 낳은 참사라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 말고도 정부로 하여금 분양가 상한제를 보완하도록 만든 이유는 또 있었다. 이른 바 ‘로또 아파트’ 속출이 그 원인이었다. 새로운 제도 시행 예고로 서울 강남 등에서 분양되는 민간 아파트에는 구름처럼 많은 신청자들이 몰려들었다. 당첨만 되면 5억~10억원의 차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인천 송도 등에서도 나타났고, 인기평형의 경우 100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강남 등 인기지역 아파트에 분양신청을 하려면 최소 10억 정도의 현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중도금 대출 등을 정부가 제도적으로 꼭꼭 막아둔 것이 원인이었다. 자연스레 거금을 현금으로 동원할 능력이 있는 부자들끼리 모여 ‘로또’ 게임을 하도록 정부가 판을 깔아주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분양가 상한제 손질은 부동산 정책 당국인 국토부가 면밀한 검토 없이 제도를 밀어붙임으로써 초래된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서울 강남 등처럼 인기지역일수록 더 이상 집지을 땅이 없는 만큼 주택재정비 사업을 적절히 활용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묵살한 것이 화근이었다.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6개월 유예기간이 주어지면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마친 단지들 중 상당수는 기간 안에 분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