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지금 디플레이션 수렁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이를 두고 수개월 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뚜렷한 답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디플레 가시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듯 보인다.

비슷한 논쟁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우리 경제가 디플레 초입에 들어서 있다는 비관적 진단이 일부 제기됐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았던 게 사실이다. 성장률이나 물가, 투자와 소비 등과 관련된 모든 지표가 그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되어주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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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는 개인이나 가계가 소비를 줄이거나 미룸에 따라 생산과 투자가 줄고, 그로 인해 고용이 감소하고,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주범이다.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더 무섭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상적인 경제상황에서는 물가가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간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이 한결 같이 연간 소비자물가 2%선 상승을 목표로 잡고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가 이전에 비해 디플레 위험에 한발 더 다가서 있다는 것은 일단 물가 추이를 통해 확인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9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0(2015년의 100을 기준으로 함)을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달보다 0.4% 하락한 수치다.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달 같은 통계수치가 명목상으론 0.0%였지만 사사오입하기 전의 정확한 수가 -0.038%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두 달 연속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셈이다.

마이너스 물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1월부터 7개월 연속 0%대 행진을 이어가며 마이너스 진입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러다가 결국 공식 통계상으로도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이 현실화되자 디플레 논란이 더 요란스레 부각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누구도 우리 경제가 디플레 늪에 빠졌다고 단언하지는 않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디플레에 근접해 있다거나 디플레에 빠져들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경우 일찌감치 현 상황을 준(準)디플레이션으로 진단했다.

디플레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경제지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저성장에 저물가가 겹쳐 나타나고 있는 점이 대표적 근거라 할 수 있다. 우리 경제성장률은 올해 1%대로 추락할 것이란 우려까지 낳고 있다. 아직 2.2%란 수치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은행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여기에 1% 미만의 물가상승률이 9개월째 나타나고 있으니 디플레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뿐인가. 설비투자는 작년 5월부터 지난 8월까지 전년 동월 대비 16개월 연속 감소했고, 수출은 10개월째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9월 수출의 경우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1.7%나 줄었다.

제조업 생산능력은 지난 8월까지 1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으며 고용 상황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통계상으론 올해 1분기중 임금근로 일자리가 50만개 이상 늘었다지만 50대 이상 일자리가 주로 늘었을 뿐 주축 연령층인 30대와 40대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 8월 고용동향과 관련, 주 36시간 이상 풀타임 근무를 하는 근로자 수가 2년 전보다 118만명 감소했다는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의 통계자료 분석 결과는 고용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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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 가시화 우려는 이 같은 제반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런 상태가 조금 더 이어지면 정말로 디플레 늪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경고다. 앞서 언급했듯이 특히 저성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물가가 고착화되는데 대한 우려가 크다.

물론 경제정책 주무 당국이나 한국은행, 그리고 통계청은 한결 같이 디플레가 가시화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저물가 지속 현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공급측 요인에 의해 발생한데다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 말부터는 물가가 다소 회복세를 보이며 1%에 근접할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다.

저물가가 공급측 요인에 의한 나타났다 함은 물가정체 현상이 소비 위축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공급측 요인, 즉 정책적 요인이 작용해 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각종 복지정책 덕분에 특정 분야의 물가 상승률이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고교 납입금이 36.2% 떨어진 것을 비롯해 병원검사료(-10.3%)나 보육시설 이용료(-4.3%) 등이 크게 내렸다는 것이 그 같은 설명의 근거다.

정부가 말하는 일시적 요인은 기저효과와 농수산물 가격 흐름과 연관돼 있다. 즉, 작년의 비교시점 물가 상승률이 높다보니 올해 상승률이 수치상 낮아졌고, 특히 지난해 농산물 가격이 폭염 탓에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것이다.

정부 주장과 별개로 국제적 기준을 참고하더라도 현재 우리 경제의 디플레 진입을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물가가 최소 2년 정도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는 것을 디플레의 판단 근거로 삼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 경제는 디플레 상태는 아니지만 그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큼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와 달리 최근의 저물가 현상이 수요측 요인에 의해 발생한 측면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더 조심스럽게는 수요측 요인에 의한 물가하락 압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분석을 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위기 탈출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저성장·저물가 고착화를 막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방법론이 고용 창출과 소비 및 투자 진작이다. 요즘처럼 대외 요인에 의해 수출이 어려운 때는 내수를 자극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해법은 지난 2년간의 시행착오를 참고삼아 정책적 오류를 하나하나 시정해가는 일일 것이다. 대표적인 재고 대상이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주52시간제, 탈원전 정책 등이다. 이들 정책의 폐기 또는 탄력적 운용만 실천해도 우리 경제가 활기를 되찾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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