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뷰]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심사에 유독 깐깐한 이유
[나이스뷰]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심사에 유독 깐깐한 이유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10.03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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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한지 석 달이 다 됐다. 수출 규제 이후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소재의 대한(對韓) 수출이 허가된 건 3일 현재까지 통틀어 7건에 불과하다. 품목별로는 기체 불화수소 3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건, 포토레지스트 3건 등이다.

이중 기체 불화수소 2건에 대해서는 지난달 30일에야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의 수출 승인이 이뤄졌다. 불화수소에 대한 마지막 승인 2건은 각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입 신청을 한 것이었다. 이들 물품은 일본에서 수출 승인이 이뤄졌지만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부분은 불화수소에 대한 경산성의 수출 규제다. 이 품목은 일본 정부가 콕 찍어 ‘위험한 전략물자’로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위험한 전략물자 관리를 제대로 안 해 해당 물품이 북한과 같은 적성국가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자 수출 규제의 표면적 이유다.

화학 전문가들 또한 불화수소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다. 독성이 강한 이 물질이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용 무기의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일부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살해당할 때 불화수소를 원료로 삼아 만들어진 독극물이 사용됐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불화수소는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도 이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이 전락물자에 대한 수출관리를 허술히 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이는 일본이 아직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확인된다. 대량 살상용 무기 제조에 쓰이는 불화수소는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값비싼 고순도 제품일 필요도 없다. 이 점 또한 일본의 주장이 엉터리임을 입증해준다.

다만 불화수소는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제품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소재다. 무기 제조용으로 쓴다거나 제3국으로 다시 수출하는 등 전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수출 규제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불화수소에 대한 수출 승인을 더욱 까다롭게 할 것이란 전망은 진작부터 제기됐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달 30일 이전까지는 수출 규제 석달이 다 돼도록 단 한 건의 불화수소 수출 승인만 내주었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일본이 지금까지 에칭가스라 불리는 기체 불화수소만 수출 승인을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불산액으로 통칭되는 액체 불화수소는 아직 한건도 승인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불화수소에 대해 일본이 깐깐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액체 불화수소 수출 승인을 내주지 않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불화수소 중 기체보다는 액체의 쓰임새가 더 많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에칭가스 수출을 통해 불화수소도 수출 승인을 해주고 있다는 명분을 얻되, 더욱 필요성이 큰 불산액은 계속 수출 통제를 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다는 얘기다. 액체 불화수소는 반도체 기판에 일정한 모양을 새기거나 불순물을 세척할 때 다량 소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화수소 전반에 대한 규제가 얼마나 강한지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제도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경산성은 개별허가를 받기 위해 수출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서류세트를 품목 유형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유형은 크게 A에서 E로 분류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일본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꾼 3대 소재 중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는 7종류의 서류 제출을 요하는 C유형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유독 불화수소는 9개의 서류 제출이 요구되는 D1 유형으로 분류돼 있다. 제출 서류가 많은 만큼 보다 깐깐하게 심사가 이뤄지고 시간도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불화수소 수출 승인을 받기 위해 일본 수출업자가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수출허가신청서, 거래허가신청 내용 명세서, 계약서 및 사본, 수출령 기재항목과의 비교표, 카탈로그 및 기술자료, 수요자의 사업내용 및 존재확인 자료, 수요자의 서약서 및 사본, 해당 화물을 사용하는 플랜트 최종제품의 제조절차 자료, 화물 수요자(또는 예정 수요자)의 해당 화물 조달실적 및 최종제품 생산자료 등이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 규제를 가하기 이전이었다면, 설사 불화수소를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많은 서류를 요구할 일은 없었다. 포괄허가보다는 다소 까다로웠겠지만 제출 서류는 수출허가신청서, 신청 이유서, 계약서 및 사본 세 종류에 불과했다는 것이 도쿄무역관 측의 설명이다.

일본의 트집 잡기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그는 불화수소 등에 대한 일본의 수출 승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설명하면서 “자료 보완 요구가 많다”고 밝혔다.

한편 우리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액체 불화수소의 국산화에 적극 나서고 있고, 상당 부분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LG디스플레이는 이달 안에 액체 불화수소 100% 국산화를 완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기업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소재 국산화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다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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