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뷰] 디플레이션 우려, 근거 있었다
[나이스뷰] 디플레이션 우려, 근거 있었다
  • 박건학 기자
  • 승인 2019.10.2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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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우려는 정말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일본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10년, 또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아직은 논쟁적인 논제들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분석하는 의견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아직은 디플레의 늪에 빠져들지 않았지만 우리 경제가 그 늪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올해 초부터 심화된 저물가와 저성장 기조가 그 배경이다. 특히 최근 들어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저물가는 디플레 우려를 키우는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민간에서 끊임없이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저물가와 관련해서는 기저효과와 계절적인 요인, 정책적 요인 등이 작용해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정부는 특히 복지 강화 등 정책적 요인, 즉 공급측 요인이 주로 작용해 저물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0%대 물가 상승률 기록이 이어졌고 8월 들어 그 수치가 0%를 찍었을 때도, 심지어 9월엔 사상 처음 공식적인 마이너스 상승률이 나타났을 때도 그대로 유지됐다. 9월의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였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래 처음 겪는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었다.

8월의 경우 통계상 소수점 한자리까지만 반올림해 집계함에 따라 공식기록은 0.0%였지만, 소수점 이하 범위를 넓힌 수치는 -0.038%였다. 실질적으로는 두 달 연속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나타난 셈이다.

만약 정부 주장대로 지금의 저물가가 순수하게 공급 측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공급 측 요인에 의해 저물가가 이어진다는 것은 여전히 수요가 살아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지속되고 있으니 물가가 추세적으로 떨어질 염려가 없고, 공급 측 요인은 정부의 정책 조절로 언제든 해소될 수 있으니 디플레 운운은 오버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에 담긴 함의다.

실제로 장기간에 걸친 물가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는 수요 부진이 주범이다.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아 공장엔 재고가 쌓여가고, 그 결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고용 감축이 초래되고, 그로 인해 다시 수요가 줄어드는 등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경제 현상이 곧 디플레다.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 나라가 일본이다. 오죽하면 ‘D의 공포’라는 말이 일반화됐을까.

저물가로 초래되는 디플레는 필시 저성장을 초래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물가와 저성장은 상호작용을 하기 십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디플레 우려가 만연한 이유 중 또 다른 하나가 저성정의 고착화 기미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상황이 심각해지자 마침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저물가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지금의 저물가 현상이 공급 측 요인 못지 않게 수요 측 요인에 의해 나타났다는 분석을 제시한 것이다.

이번 분석의 심각성은 민간 연구소보다 보수적 입장을 취하기 쉬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이는 그만큼 상황이 간단치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KDI는 28일 발표한 보고서(‘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를 통해 올 들어 나타난 저물가 현상이 수요 측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공급 측 요인을 거듭 강조해온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정규철 연구위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그 근거로 저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지목했다. 보고서는 공급 측 요인이 크게 작용할 경우 물가상승률과 성장률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지금의 우리 현실을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원인에 대한 진단으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오류 가능성을 지적했다. 통화정책 운용 자체를 탓했다기보다 운용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한 것이다. 즉, 한국은행 통화정책 운용체계가 경기 부양이나 물가 안정보다 금융안정에 더 주안점을 주도록 짜여져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게 보고서가 지적한 핵심 내용이었다.

그 바람에 나타난 정책결정 상의 오류 사례로 지난해 11월의 금리 인상을 거론했다.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었지만,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국은행은 당시 경기 상황을 고려해 금리를 인하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대응을 위해 반대의 결정을 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당시 한국은행의 결정엔 정부의 입김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보고서는 이 점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총리와 부동산 주무 부처 장관이 한국은행을 향해 금리 인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했었다.

물론 KDI가 아직 디플레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아니었다. 정 연구위원도 정부의 입장처럼 지금의 물가 하락이 일시적 공급 충격에 의해 초래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동시에 물가 하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일시적 요인이 해소되면 물가가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일시적 요인을 내포하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 역시 9월 상승률이 0.6%에 불과할 정도로 저공비행 중임을 감안하면 무작정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당장 필요한 것은 지금의 저물가 현상을 단순히 물가 차원에서만 바라보려는 시각을 교정하는 일이다. 통화정책은 물론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로써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도록 자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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