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1년 만에 86만7000명이나 증가했다는 통계 결과가 발표됐다. 수치 자체도 놀랍지만 일자리 정부를 앞세운 현 정부가 그간 줄기차게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해온 점을 생각하면 더욱 충격적이다.

이 같은 사실은 통계청이 매년 이맘 때 발표하는 통계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29일 발표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가 그것이었다. 조사 결과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6.4%였다. 1년 사이 비정규직 비율이 3.4%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비율만 놓고 보았을 때 2007년의 36.6% 이후 최고 수준이다.

강신욱 통계청장. [사진 = 연합뉴스]
강신욱 통계청장. [사진 = 연합뉴스]

자료를 집계한 통계 당국도 놀랐던 듯 당일 발표 현장에는 강신욱 통계청장이 직접 나와 기자들에게 통계 결과에 대한 설명에 적극성을 보였다. 평소 과장급 인사가 나와 통계 결과를 브리핑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강 청장은 비정규직 86만여명 증가 부분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성 설명을 곁들였다. 명목상 비정규직 숫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해명의 핵심은 조사 방식에 변화가 생기는 바람에 과거에는 잡히지 않은 채 숨어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이번에 비로소 모두 파악됐다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지난해 통계 발표치를 토대로 비정규직 숫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애써 강조했다.

강 청장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5년 만에 조사 방식과 관련된 규정을 고치는 바람에 이번에 처음으로 본조사와 함께 ‘병행조사’를 실시하게 됐음을 강조했다. 그 결과 35만~50만명의 기간제 근로자가 추가로 포착되면서 비정규직 집계치가 그만큼 더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전에는 비정규직 여부를 가리기 위해 조사 대상자에게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지만을 물어보았었는데 이번 병행조사에서는 계약 예상 기간을 묻는 문항이 추가됐다. 즉, 이 문항이 응답자로 하여금 자신이 정규직이 아님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일으키면서 비정규직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설명이었다. 강 청장은 이런 효과를 업고 이번에 추가로 포착된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35만~50만명 정도 된다고 강조했다.

강 청장의 설명을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이를 토대로 역산을 해보면 최소 36만7000명, 최대 51만7000명의 비정규직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체 비정규직 증가분 86만7000명에서 조사 방법상 차이로 인해 늘어난 수치를 제외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 청장은 그 같은 계산 결과가 맞지 않다고 항변했다. 그는 “올해 부가조사 결과를 작년 조사 자료와 증감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사 방법 차이에 의한 효과를 따로 걷어내 정확한 결과치를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도 해명에 나섰다. 그는 “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대개 32~33% 정도”라면서 이번에 취업자 수가 전반적으로 늘어나면서 비정규직도 동반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들의 이 같은 해명은 또 다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조건, 같은 조사 방식으로 조사함으로써 상대비교가 가능한, 소위 시계열 자료는 제시하지 않으면서 이전과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계 당국자로서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 바뀐 ILO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조사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비교 가능한 시계열 자료를 생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이 이 자료를 생산하지 않았다면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이날 통계 조사 발표 후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기자들로부터 “최근 들어 통계청이 시계열을 단절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질문에는 통계청이 정부에 정치적으로 불리한 자료가 될 것을 우려해 시계열을 고의로 단절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깃들어 있었다.

사실 통계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는 강 청장 취임 때부터 제기됐었다. 전임 청장이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교체되면서 통계의 정치 도구화 논란이 일었고, 그 후임으로 강 청장이 부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강 청장은 전임 청장 시절의 통계청 발표 자료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 제기를 했던 인물이다.

전임 황수경 청장이 퇴임하면서 남긴 발언도 파장을 일으켰었다. 그는 경질이 결정된 직후 자신이 윗선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정부 입맛에 맞게 통계를 ‘마사지’하는 일을 하지 않아 괘씸죄에 걸려 경질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이번에 제기되는 각종 비판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이번 통계 발표 현장에서 나온 ‘시계열 단절’ 시비는 통계의 정치 도구화에 대한 우려가 아직 상존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통계청은 오해를 살 일이 없도록 보다 신중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통계도 문제지만 통계를 분석하는 과정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통계는 정부의 정책을 입안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된다는 점 때문이다.

통계청은 정확한 통계와 그것을 토대로 한 객관적 분석으로 말하면 그만이다. 통계청장이 굳이 과장급 직원을 대신해 기자들 앞에 나선 뒤 고용의 질이 나빠졌다는 해석을 미리 견제하려는 듯 행동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볼썽사납다. 그 같은 행동은 통계청의 독립성 및 통계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떨어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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