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달 22일 첫 회의를 가졌던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예결위)는 다음주 초 전체회의를 재개해 정부 부처별 심사를 벌인다. 그러나 시작 단계부터 여야 간 신경전이 치열해 법정기한에 맞춰 예산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이뤄질지 벌써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8일 예결위에 출석해 “경제 상황이 엄중한 만큼 내년도 예산안은 반드시 기한 내에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법정기한은 12월 2일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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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총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예산안은 본예산이든 추경이든 내용 못지 않게 처리 시점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시간표에 맞춰 재정 투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엄중한 시기라면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우선 예산안 규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규모를 513조5000억원(총지출)으로 대폭 늘린 것이 그 이유다. 올해 대비 예산안 규모 증가율은 9.3%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기록된 9%대 증가율이다. 이는 금융위기 수렁을 막 지난 2009년의 증가율(10.7%) 이후 가장 큰 기록이다.

한국당은 특히 60조 이상의 적자국채 발행을 전제로 내년도 예산안이 짜여졌다는 데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자칫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데다 거대 예산 편성으로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여당 표를 늘리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는 게 반발 이유다. 한국당의 경우 이미 내년도 예산안을 “최악의 예산안”이라 단정한 뒤 최소 15조원 삭감을 내부 방침으로 정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같은 내부 방침이 사실이라면 한국당도 슈퍼예산 편성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수 부진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초슈퍼 예산안을 디민 것에 비하면 벼르는 삭감 정도가 작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한국당 역시 우리 경제 여건상 확장적 재정 운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한국당도 내년 총선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나라 살림살이가 얼마나 튼실하게 이어질 것인가를 면밀히 살피기보다 정치적 계산에 더 치중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여야가 벌이는 정치적 수싸움은 익히 보아온 터다. 이는 진보와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반복돼온 행태다. 따라서 이번에도 전체 삭감 규모보다는 이 점이 법정기한 내 예산안 처리 여부를 가름할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내용을 차치하고 크게 눈길이 가는 것이 말 많고 탈 많은 일자리 예산이다. 이전처럼 현금 살포성 항목이 대거 포함된 예산안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 엄밀한 심사와 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쓰이는 예산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도를 넘어 해악을 끼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통계상의 취업률과 고용률 집계에 거품을 일으킴으로써 경제 정책 방향을 잘못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처리를 당부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기한 내 처리를 당부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최근까지도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서 1년 사이 비정규직이 86만여명이나 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간 나타난 월별 일자리 증가폭에 대한 통계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단기 알바성 일자리를 수십만개씩 만들어내기 위해 예산을 쏟아붓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경제 전반에 대한 긍정적 효과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초슈퍼’일지라도 정부 예산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다.

그런 곳에 쓸 돈은 과감하게 삭감해 경제에 활력을 일으킬 수 있는 분야에 예산이 집중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기보다는 취업 교육 및 훈련비를 지원하는 일, 사업장에 고용장려금을 대거 지원하기보다는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일 등이 더욱 절실하다. 나아가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보강하고, 연구개발(R&D)을 적극 지원하는데 보다 치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별다른 정책 변화 없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일자리 예산을 다시 한 번 대폭 올려잡았다. 올해 21조2000억원보다 22%나 늘어난 25조8000억원의 일자리 예산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런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선 여당의 정책위원회는 여전히 우리 고용률이 올해 9월까지 역대 최고(66.7%)를 기록했고, 8월 및 9월 취업자 증가폭 또한 각각 45만명, 34만명을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이러니 분식 통계자료를 이용해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내년에도 올해처럼 퍼주기 예산,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재정 집행이 그대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부분을 두 눈 부릅뜨고 훑어가며 바로잡는 것이 야당의 할 일이다. 이런 항목들을 대거 정리하고 정말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심사에 임하는 것이야말로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기본자세다.

야당은 총선을 의식해 적당히 타협하며 짬짜미 예산을 꾸미기보다 불요불급한 선심성 예산 등을 낱낱이 가려내 효율성을 높이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올해보다 20조원이나 더 늘어 181조원 규모로 커진 복지 예산도 현미경 심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야당들의 진짜 실력이 예산안 심사를 통해 십분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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