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중순 경 통계청의 고용동향 발표 때마다 매체들이 취업자 증가폭 외에 따로 주목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60대 이상 고령층에서의 취업자 증가폭이다. 통계상 이 수치가 갖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 배경이다. 이 수치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통계상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 의미에 대한 성찰 없이 단지 수치만 강조한다면 최근의 우리 고용 상황이 실제보다 크게 좋아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통계 분식’이란 극단적 비판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단순 취업자 증가폭에 대한 언론의 평가절하는 지난해부터 유독 심해졌다. 그 바람에 청와대의 볼멘 소리도 날로 심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최근 들어 발표되는 고용동향에 유별나게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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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예산을 대거 늘려 고령자들을 상대로 한 단기 알바성 일자리를 양산해왔다. 소요 예산이 어떻다는 둥 일일이 나열할 것도 없이 이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이 그것을 예고해주고 있다.

지난 9월의 경우만 놓고 봐도 현실이 어떠한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9월의 전체 취업자 증가폭만 보면 우리의 고용 상황은 매우 양호하다 할 수 있다. 작년 같은 달에 비해 늘어난 취업자 수는 34만8000명이었다. 명목상 수치로는 꽤나 좋은 편이다.

하지만 연령대별 취업자 증감 현황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 사회의 허리인 3040의 취업자가 크게 감소한 반면, 60대 이상 취업자 증가폭은 38만명으로 집계됐다. 늘어난 전체 취업자보다 60대 이상 취업자 증가폭이 크다는 것은 50대 이하 취업자 수가 감소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짐작하다시피 60대 이상 취업자들의 일이란 게 대개는 소일거리이거나 헐값 노동이다. 전자는 정부가 재정을 쏟아부어 늘린 단기 일자리인 경우가 많고, 후자는 직장에서 일차 퇴직한 뒤 임금과 기타 처우를 대폭 삭감당한 상태에서 재고용돼 일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우리나라 민간기업 근로자들은 보통 55세 이후 어느 시점에 임금피크를 맞이한다. 정점을 지난 뒤엔 60세 남짓의 정년퇴직 때까지 해마다 점진적 임금 삭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60세가 넘으면 계약직으로 변신해 더 크게 삭감된 임금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이마저도 운이 좋은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케이스다.

온갖 네트워크를 동원해 재취업을 한다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에도 감지덕지하며 일을 하는 게 보통이다. 잘 나가는 직장 출신의 엘리트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나은 것도 아니다. 주변에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교수님’ 소리에 귀는 호사를 누릴지 몰라도 벌이는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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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 조직의 오너십을 지니고 있거나, 전문직 자격증을 지닌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개의 60대가 비슷한 처지를 경험하고 있다. 그저 일만 하게 해준다면 감사히 응하겠다는 이들이 널려 있다. 돈도 돈이지만 노동이 주는 자존감과 보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빈둥거리지 않고 일을 해야 삶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일을 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60대 이상에게 돌아가는 일자리 중에서도 대종을 이루는 것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급조한 일자리들이다. 놀이터 지키기나 쓰레기 줍기, 라돈 측정 등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 일자리의 폭증은 주당 36시간 미만 근로자 수 증감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월의 경우 주당 36시간 미만을 일한 취업자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폭은 73만7000명이었다. 반면 주당 36시간 이상 일한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45만2000명 감소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주 36시간 미만을 일한 사람 중엔 2030 취업자들도 포함돼 있다. 외국 여행객들의 한국 방문 증가와 배달업 활성화로 인해 젊은층이 숙박 및 음식점업 분야에서 알바성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이다. 상황이 그렇더라도 늘어난 주당 36시간 미만 일자리의 주역은 역시 60대 이상이다. 9월 기준 60대 이상 취업자 증가폭이 청년층(15~29세) 취업자 증가폭의 9배 이상인 것만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통계청은 시간대별 취업자를 집계할 때 주당 36시간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한주 동안 이보다 짧은 시간을 일하는 이들은 단기 근로자로서 거의 비정규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추가로 부연하자면 통계 분류상 상용근로자는 1년 이상 고용계약을 맺은 근로자를 의미한다. 계약기간이 1개월 미만이면 일용직, 1개월 이상 1년 미만이면 임시직으로 분류된다. 이밖에 고용동향 자료를 접할 때 특별히 알아두어야 할 점은 조사 대상 기간(1주) 동안 단 1시간만 수입을 위해 일을 했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 재정으로 만들어진 일을 1시간만 수행했더라도 그 시점이 조사 주간에 포함돼 있다면 해당 근로자는 통계 자료상 취업자로 집계된다. 이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만들어낸 일자리가 허상에 가까운 것으로서 ‘통계 분식’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더라도 고령자 단기 근로자 증가 현상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쁜 것은 이 수치를 단기간에 늘려놓은 뒤 마치 고용 사정이 크게 호전된 것처럼 대중을 호도하는 일이다.

어쨌거나 고령자 일자리는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노령 인구가 급속히 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부터 고령자들에게 자립 능력을 키워주는 작업을 차근차근 하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는 큰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 현재 10%대 중반인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만 넘어가도 지금처럼 정부 재정으로 단기 일자리나 만들어 현금을 나누어주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사회 상황이 변한 점도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키운다. 직계 존비속에 방계까지 한 곳에 모여살던 농경시대와 달리 도시생활이 주가 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이전과 같은 노인 부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효(孝)의 개념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국가 지원 하에 노인들이 안정적인 자립 기반을 갖추도록 제도를 완비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렇게 해야만 국가의 재정 건전성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현재 정부가 취하고 있는 노인 정책은 지나치게 단세포적이고 임기응변적이다. 지금처럼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서 고령자들에게 단기 일자리나 알선해주고 기초연금 수혜폭을 늘려 이전소득만 올려준다면 후세들의 짐은 갈수록 커지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노인 복지의 방향을 ‘퍼주는 복지’에서 ‘자립을 돕는 복지’로 전면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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