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아세안 10개국 등을 포함해 16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타결됐다. 이름하여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일단 동참을 유보했지만 인도도 조만간 이 협정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협정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참여하는 메가 FTA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우리 교역사에 또 하나의 큰 획이 그어졌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사건이다.

RCEP 협정문 타결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 협정을 완성하기 위한 최초의 협상은 2012년 11월 시작됐다. 협상을 주도한 쪽은 중국이었다. 여기엔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려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최초 협상 이후 참가국들은 장관급 회의 16차례, 정상회담 3차례 등을 이어가며 합의점에 접근해갔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리고 이번에 20개 챕터의 RCEP 협정문을 작성한 뒤 참가국 정상들이 타결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향후 시장개방 등 남은 문제를 해소한 뒤인 내년에는 최종적으로 협정을 타결·서명하게 된다.

이상에서 보듯 RCEP는 중국과 미국이 제각각 세계 교역질서를 주도하려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탄생한 다자간 협정 체계라는 속성을 지닌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TPP를 스스로 걷어참으로써 상황이 바뀌었지만, 이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집단으로 대항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안보동맹인 일본과 호주가 이 협정에 참여한 배경에는 실리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밖에도 RCEP 타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우선 RCEP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이는 참가국 수와 면면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RCEP 참가국은 세계 2, 3위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한국과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10개국 등이다. 수년 안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3대 경제대국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인도도 동참할 것이 유력시된다. 아세안은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브루나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인도의 참여를 가정할 경우 RCEP는 지구촌 인구의 절반과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정도를 아우르는 초슈퍼급 무역협정 체계로 자리매김한다. 참가국들의 총인구는 36억명, 총 GDP는 25조 달러에 이른다.

더구나 참가국들 다수가 이제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신남방 국가들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RCEP는 규모 이상의 잠재력을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협정에 참여하고 있는 신남방 국가들은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고 젊은 인구 비중이 높다는 특장점을 지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만큼 우리가 취할 이익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외교 및 통상교섭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경우의 얘기다. 당장 기대되는 것이 교역 다변화 효과다. 한국은 RCEP 타결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가면서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돌발 변수에 대응할 여력을 키워갈 수 있다. 나아가 미국 주도로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통상질서를 스스로 구축하는 등 안정적으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 투자 기반 확보라는 차원에서도 신남방 국가들이 갖는 가치는 매우 크다.

부가적으로 일본과의 양자간 FTA 체결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일본은 RCEP 참여국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와 양자 FTA를 체결하지 않은 나라다.

RCEP 작동이 긍정적 효과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농민들의 반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자든 양자든 FTA는 우리 농업의 기반을 흔들 위험성을 안고 있다. 특히 RCEP는 중국산 저가 농산물의 대량 유입 물꼬를 트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인도가 RCEP 협정문 타결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자국내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다.

RCEP로 인해 우리가 중국 주도의 교역질서 속에 편입됨으로써 초래될 미국과의 갈등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호주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각국은 미국과 안보상 동맹이지만 교역 문제에 있어서는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안게 됐다.

RCEP가 한·일FTA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함으로써 양국 간 교역량을 늘릴 여지가 생겼지만, 경계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오랜 과제인 대일(對日) 무역적자 해소가 더욱 요원해질 가능성도 덩달아 커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상의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해 상황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RCEP 타결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 분명하지만, 잘못 대응했다간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명심해야겠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