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빠진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미국의 고율 관세라는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날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미국이 수입 자동차와 부품 등에 대해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게 그 원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들이민 관세 부과의 근거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의 해묵은 조항이다. 이현령 비현령식의 해당 조항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미국 마음대로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 마음대로라고 할 수 있다.

외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고율 관세 부과 등을 통해 긴급히 수입 제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문제의 법조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전 정부에서는 오랜 동안 방치했던 억지스러운 이 조항을 툭 하면 들이밀곤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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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난해에도 이 조항을 들어 한동안 수입 자동차 고율 관세 카드를 흔들며 대미 자동차 수출국들을 위협한 바 있다. 철강의 경우 실제로 이 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 같은 행동은 관세장벽을 통한 수입 규제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힘을 앞세워 줄기차게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해당 법조항을 들먹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동법 232조를 근거로 내세운 가운데 수입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이하 현지시간)까지 자동차와 관련 부품들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때가 임박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 결정 시점을 당분간 연기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해진 시한이 오는 13일이다.

운명의 날이 다가오자 미국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의 자동차 강국과 일본, 한국이 그 나라들이다.

지금 분위기로 보면, 그 중에서도 주요 타깃은 유럽 각국일 가능성이 높다. 유럽에서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독일이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은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 간의 협상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이들 간에 대화가 원만히 이뤄져 해결책이 나온다면 한국 등도 고율 관세 부과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이다. 대화가 잘 돼 관세 부과 결정 시한이 다시 연기되거나 취소된다면 한국과 일본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 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독일 등 유럽 자동차 수출국들은 현재 미국과 투자 확대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재선을 위해 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내 일자리 창출에 혈안이 돼 있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은 미국에서 2만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정도의 투자를 실행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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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등과 달리 한국은 일단 사정권에서 비켜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확실한 근거는 미국과 맺은 양자 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참여정부 시절 미국과 FTA를 체결한 이래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 제기에 따라 재협상을 벌였고, 결국 한·미FTA를 재타결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FTA 재협상 타결 이후 7% 가까이 감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가졌던 큰 불만 하나가 어느 정도 해소된 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을 통해 고율 관세 부과 결정 시한을 이달 13일로 연기하면서 한·미 FTA 재협정 등을 고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외신 보도들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에 또 한 번 고율 관세 부과 결정시한을 6개월 연기할 가능성이 있다. 애초 시한이 오는 13일이므로 조만간 연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시한 연기 결정이 없더라도 한국은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란 관측이 많은 편이다. 주타깃도 아닌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양자 간 FTA 재타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들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이 크게 늘어난 점이 그 배경이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의 대미 누적 자동차 수출액은 111억7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7%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팰리세이드 등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의 판매가 호조를 보인데 기인한다. 지난 10월 한 달만 놓고 보아도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5만7094대를 팔았다. 작년 같은 달 대비 8.4% 증가한 수치다. 판매 호조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의 한국 자동차 점유율도 1~9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0.2%포인트 끌어올렸다. 올해 1~9월 한국 차의 미국내 점유율은 7.7%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 호조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 자동차 업체들은 대미 수출이 잘 돼도 걱정, 잘 안 돼도 걱정인 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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