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닥론에 불을 붙일 만한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제시됐다. 우리 경기가 현재 저점에 있거나 그 앞에 바짝 다가서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진단 결과를 제시한 곳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었다.

KDI는 13일 행한 ‘2019년 하반기 경제전망’ 브리핑을 통해 우리 경제가 지금 저점 근방에 접근해 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최근 들어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등의 심리지표가 반등하고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KDI는 지난 5월에도 경제전망을 브리핑하면서 올해 4분기 또는 내년 상반기에 우리 경제가 저점을 지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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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저점을 지나고 있거나 조만간 지나게 된다는 말은 곧 향후 흐름이 상승세를 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9월 정부는 심사숙고 끝에 최근 경기 정점이 2017년 9월이라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따라서 KDI의 진단이 적중한다면 2년 이상 지루하게 이어진 경기 하강도 머지않아 끝나게 된다.

다만, KDI는 이 같은 진단을 제시하면서 “대외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를 붙였다. 기대와 달리 미·중 무역갈등,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혼란 등이 심화된다면 우리 경제가 개선되는데 보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KDI는 이 같은 진단을 토대로 향후 경기 부진이 더 이상 심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KDI는 같은 맥락에서 내년에는 설비투자가 8.0% 증가하고, 건설 투자 감소세는 토목 부문의 투자 활성화에 힘입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 내다봤다.

KDI는 내년엔 민간소비 또한 올해보다 다소 개선돼 2.1% 증가하면서 미약하나마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동시에 드러냈다. 내년엔 신흥국들의 투자 수요가 확대되면서 그들 국가로의 상품 수출이 늘어날 것이란 의미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유발했을 정도로 미약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내년 들어 0.6%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올해 상승률보다 0.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KDI의 전망을 종합하면 우리 경제는 조만간 바닥을 찍고 되튀어 오를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KDI는 우리 경제가 내년에는 2.3%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0%로 제시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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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3% 성장률 제시에도 중요한 기본 전제가 깔려 있었다. 대외 환경이 크게 악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가 3.4% 성장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럴 경우 한국 경제는 무리 없이 2.3% 정도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의 세계적 수요가 빠르게 회복될 경우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나타냈다.

KDI의 이번 경제전망은 근래 들어 간간이 제기된 경기 바닥론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돼온 경기 바닥론은 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 선호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현상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경기가 활황을 보이면 안전자산 대신 주식 등 위험자산을 찾는 흐름이 자연스레 나타난다.

안전자산의 대표 주자격인 금은 최근 들어 g당 5만4000원 남짓을 호가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6만2000원을 넘겼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한 셈이다.

채권 가격 하락도 가시화되고 있다. 채권 가격 하락은 시장에서의 채권 금리 상승세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채권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 속성을 지닌다.

한편 KDI는 경기가 상승 국면에 접어든다 해도 우리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잠재성장률 수준에 못 미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통화정책을 보다 완화적으로 운용하면서 확장적으로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금융 안정’보다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책무에 충실하도록 운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리 인하 여력에 대해서는 명목금리 하한이 0%라는 점을 거론하며 “인하 여력이 남아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확장적 재정운용과 관련한 주의점도 제시했다.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수입 확보에 신경을 쓰면서 총수입과 총지출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KDI는 특히 지출에 대한 성과평가를 실시해 효율화를 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되 돈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를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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