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 52시간제 보완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내년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기업에 대해서도 주 52시간제가 확대적용되는 만큼 하루 빨리 문제점을 손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먼저 적용된 이후 많은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 우려했던 대로 대기업들에서도 각종 시행착오가 나타났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업종별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군사작전하듯 제도를 강행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계절적 요인에 의해 근무시간과 형태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업종 등에서는 진작부터 아우성이 일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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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주 52시간제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였다. 근로자들 일부는 주 52시간제가 실질적인 급여 감소로 이어지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문제가 하나 둘 부각되자 여당 의원을 겸하고 있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조차 법안 통과에 무작정 찬성했던 점을 반성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예견됐던 문제가 현실화되자 기업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주 52시간제의 보완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그중 한 예가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남에서 나온 모 기업인의 불만 섞인 보완 요구였다.

제기된 불만의 핵심은 주 52시간제가 연구개발(R&D) 직군의 업무 효율을 심각하게 제약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이 발언이 나온 때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막 시작되던 시점과 일치했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이 수출규제 대상으로 앞세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3대 소재 개발을 위해서라도 주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주 5시간제가 특히 R&D 직군의 업무 성과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된 탓이다.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인의 불만이 제기되자 고용노동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당시 고용부가 제시한 방안이 연구개발 기업에 한해 최장 3개월 동안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도록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호들갑도 잠시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들어서야 같은 내용의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52시간제 확대 적용이 코앞으로 닥쳐오자 고용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들에게 보완책 마련 사실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 보완책이라는 것은 결국 지난 7월 고용부가 내놓았던 특별연장근로 허용 범위의 확대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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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선안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진작에 채택할 수 있었다. 국회 논의도 의결도 필요 없이 정부가 시행규칙만 개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연장근로는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 명기된 개념이다. 정부 기관이 이를 승인하면 해당 기업은 12시간까지로 제한된 주당 연장근로 시간을 늘릴 수 있다. 다만, 이 제도를 활용하려면 기업은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청에 승인신청을 해야 한다. 승인이 떨어지면 기업은 3개월 시한으로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연장근로는 기업이 원한다고 해서 모두 승인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장에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재난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등으로 승인 조건이 까다롭게 규정돼 있다. 이 같은 승인 조건을 규정한 것이 근기법 시행규칙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보다 활발히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할 수 있게 하려면 정부가 관련 시행규칙을 고쳐야 한다. 정부의 의지만 확고하면 언제든 특별연장근로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에도 보듯 특별연장근로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지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부의 의지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특별연장근로 허용 범위를 ‘찔끔’ 늘리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기류는 노동부의 국회 보고 내용을 통해 감지된다.

노동부는 시행규칙 개정과 관련한 국회 보고 시 특별연장근로 신청 이유가 타당하고 노사 합의가 있을 경우에 한해 승인하겠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조합의 반대를 미리부터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가 아닌가 의심을 살 만한 부분이다.

알려진 내용대로 시행규칙의 ‘찔끔’ 개정이 이뤄진다면 기업 운영자들의 애로는 크게 덜어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기업들의 불만 또한 크게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중소기업계는 300인 미만 기업들에 대한 주 52시간제 시행 시점을 1년 이상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주 52시간제를 당분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기 관련 단체들은 국회와 정부를 향해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위 법령인 시행규칙 개정 정도를 넘어 모법인 근기법 개정을 통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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