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이하 홍콩인권법안)이 미·중 갈등의 잠재적 뇌관으로 새롭게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양국 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27일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법안에 서명할지, 아니면 거부권을 행사할지에 대해 확실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고의로 연막전술을 펼치며 무역협상 상대인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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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을 받아든 트럼프 대통령은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법안에 서명을 할 듯 말 듯한 신호를 번갈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들(홍콩 시민들)과 함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기 위해 법안에 서명할 듯하다가도 곧바로 시 주석과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거부권을 행사할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매체들도 엇갈리는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미국 통신사인 AP는 상·하 양원이 압도적 지지로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을 거론하며 “거부권 행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콩인권법안이 미국 의회를 차례로 통과하는 동안 나온 반대표는 하원 표결시 던져진 한 표뿐이었다. 그만큼 이 법안은 미국 여야 모두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반면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모호함을 즐기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에 중국은 속을 태우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 25일 주중 미국 대사를 초치해 미국이 홍콩인권법안을 시행하려 하는데 대해 항의했다. 미국이 자국법을 통해 임의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려 한다는 것이 항의의 이유였다.

홍콩인권법안이 무엇이기에 중국이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홍콩인권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홍콩인권법안은 지난 주 미국의 상·하 양원을 통과했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송부됐다.

홍콩인권법안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해온 홍콩에 대해 미국이 사회·경제적으로 부여해온 특혜를 철회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는 홍콩 자치 수준을 평가한 뒤 그 결과에 따라 기존의 특혜 정도를 재조정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자치 수준 평가의 주체는 미 국무부다.

미국 의회 의사당. [사진 = EPA/연합뉴스]
미국 의회 의사당. [사진 = EPA/연합뉴스]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 당국의 홍콩 민주화 의지와 정도에 따라 그간 관세와 무역, 비자 발급 등 분야에서 부여해온 각종 특혜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법안에는 홍콩 민주화 역행을 주도하거나 그에 일조한 사람들에 대해 미국 입국을 제한하고, 경우에 따라 그들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언론의 관심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지만 중국의 심기를 자극하는 법안은 또 있다. 홍콩인권법과 함께 미국 의회를 거쳐 트럼프 대통령에게 송부된 홍콩보호법이 그것이다. 홍콩보호법은 미국산 시위진압 장비의 대(對) 홍콩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누가 보더라도 홍콩 민주화 시위 참여자들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의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중국이 발끈하며 미국에 반발하는 이유다.

이 두 개의 법안은 공통적으로 중국을 향해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홍콩 민주화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그 메시지의 대강이다. 비록 두 개의 체제(양제)를 용인하고 있지만, 홍콩을 하나의 중국(일국)이란 틀 속에서 바라보는 중국 당국에게는 내정 간섭으로 비쳐지는 메시지인 셈이다.

내정 간섭 시비와 별개로 홍콩인권법안이 지닌 잠재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할 수 있다. 당장 홍콩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상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될 수 있어서이다. 그간 홍콩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까지의 홍콩은 대미(對美) 수출의 훌륭한 우회통로다. 하지만 미국이 홍콩에 대한 교역상의 특혜를 없애면 최대 30%까지의 고율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열린다.

홍콩인권법안을 송부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주어진 10일간의 숙고 기간이 끝나기 전에 가부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시한은 다음달 2일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은 채 시한을 넘긴다면 홍콩인권법안 등은 다음달 3일부터 효력을 발하게 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라면 의회가 해당 법안을 재상정해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이 때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하면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은 무효화된다.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향후 과정을 상정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 등에 일단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거부권 행사로 중국에 생색을 내면서도 종국엔 의회를 통해 법안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상·하 양원이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한 만큼 홍콩인권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 해도 재의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어차피 홍콩인권법안은 효력이 발생되도록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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