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견된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했다.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일주일 가까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서명을 강행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 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한 날은 27일(이하 현지시간)이었다. 문제의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2일까지 서명하지 않을 경우 3일부터 자동 발효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법안은 다시 미국 의회로 되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법안은 의회의 재의결을 거쳐 효력을 발하리라는 것이 지배적 견해였다. 재의결 요건인 의석수 3분의 2 이상 찬성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초 이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나온 반대표는 상·하 양원을 통틀어 단 1표에 불과했다.

홍콩인권법안 서명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 [사진 = EPA/연합뉴스]
홍콩인권법안 서명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 [사진 = EPA/연합뉴스]

그만큼 미 의회는 여야인 공화당과 민주당 등 당적을 가리지 않고 이 법안에 대해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미국민들의 열망에 부합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홍콩인권법은 미국 국무부가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한 뒤 중국의 강압에 의해 그 수준이 낮아졌다고 판단할 경우 각종 제재를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재 내용은 홍콩 자치의 훼손을 주도한 이들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그들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한다는 것 등이다. 나아가 관세와 무역 등 분야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도 가능하도록 돼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홍콩은 지금까지 고율 관세 장벽을 피해 미국으로 상품을 수출할 수 있는 중요한 우회통로였다.

법안 서명이 이뤄지자 중국은 예상했던 대로 강하게 반발했다. 법안 서명을 ‘패권행위’로 규정한 뒤 그 같은 행동이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 정책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방해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중국의 반발은 진작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미국과 무역협상을 진행 중인 중국 당국은 상대를 향해 거듭 경고를 보냈다. 그로 인해 법안 서명이 이뤄질 경우 미·중 무역협상이 또 다시 난항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었다. 때는 마침 두 나라가 앞서 도출된 ‘1단계 합의’를 마무리하기 위한 막판 협상에 몰두하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미국 언론들을 통해 제기됐다. 그런데 의외로 빨리, 당연하다는 듯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 서명을 단행했다.

물론 법안 서명엔 수지타산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 나름의 계산이 개입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어차피 법안은 효력을 발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했을 수 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체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법안의 효력 발생을 주도하는 형식을 취하는 게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뜻이다.

[사진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 AP/연합뉴스]

현지 언론들의 분석대로 중국이 마땅한 대응 카드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계산에 넣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법안 서명이 강행되자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강력 반발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협상의 주무 당국인 중국 상무부는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상무부 대변인은 입장을 듣고자 하는 기자들에게 “공개할 내용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속은 끓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것을 시인했다고 볼 수 있다.

법안 서명으로 단지 미국이 선택할 수단이 하나 더 늘었을 뿐 법안 내용의 실행은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이 중국의 반발을 약화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법안을 발효시킨 뒤 그 내용의 실행 여부를 대중(對中) 협상의 새로운 카드로 삼으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행태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옳을 듯 싶다.

그 모든 것을 상정한다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인권법안 서명에서는 중요한 시사점이 발견된다.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인 자유와 인권 존중이라는 대의명분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발신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 같은 행동이 정치적 타산의 결과라 할지라도 그가 대의명분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는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추후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 시행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지 여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홍콩인권법안 서명 강행은 향후 북한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나가야 할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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