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또 한번 자극하는 지표가 발표됐다. 이름하여 ‘GDP(국내총생산) 디플레이터’다. 이 지표가 발표되자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한국은행은 3일 ‘3분기 국민소득’ 통계자료를 발표하면서 올해 3분기의 전 분기 대비 실질 GDP 증가율이 0.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한 증가율은 2.0%였다. 이번에 발표된 것은 잠정치로서 전 분기 및 전년 동분기 대비 증가율 모두 앞서 발표된 속보치와 동일했다. 잠정치는 확정치는 아니지만 속보치 산정시 누락됐던 일부 통계자료들을 보강해 산출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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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자료 중엔 GDP 디플레이터도 포함돼 있었다. 이 지표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1.6%로 집계됐다. 이는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우리 경제가 홍역을 치렀던 1999년 2분기 당시 -2.7%를 기록한 이후 나타난 가장 큰 감소폭이다. 이 지표는 지난해 4분기 -0.1% 기록을 시작으로 4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이는 역대 최장 마이너스 기록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은 발표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선 GDP 디플레이터의 정확한 개념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한 수치다.

이 값이 이전 비교 시점보다 하락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GDP 디플레이터는 한 나라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종합물가지수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일반 소비자인 개인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내수 물가 및 기업들과 밀접히 연결된 수출·입 물가까지 포함된다. 결국 GDP 디플레이터는 내수와 수출·입 부문 디플레이터를 아우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지표가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해서 반드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지나치게 낮은 상황이 이어졌거나, 혹은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올해 3분기 GDP 디플레이터의 낮은 상승률은 수출·입 디플레이터, 특히 수출 디플레이터의 상승률이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과 주로 연관돼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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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항목별로 살펴보면 올해 3분기의 내수 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 대비 1.0% 상승했다. 전 분기와 비교할 때 상승률은 0.7%포인트 축소됐지만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수출 디플레이터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6.7%를 기록해 전체 GDP 디플레이터의 상승률을 끌어내린 주범으로 지목됐다. 수입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0.1%였다.

이상의 사실들은 3분기 중 GDP 디플레이터가 1년 전에 비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물가는 소폭 상승했음을 말해준다. 다만 수출 물가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수출품의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는 얘기다. 수출·입 디플레이터를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수입품 가격은 미미하게, 수출품 가격은 비교적 크게 하락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수출 디플레이터 하락을 주도한 품목은 반도체와 화학제품이었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는 GDP 디플레이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으로 꼽힌다. 반도체 가격 외에 국제유가와 환율 등도 GDP 디플레이터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요소들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날 발표된 자료의 해석과 관련, “GDP 디플레이터 하락이 직접 국내 물가 상승률 하락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내 소비자물가 외에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GDP 디플레이터의 등락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 같은 설명의 배경이다. 이 같은 설명은 GDP 디플레이터 발표 자료로 인해 디플레이션 우려가 과도하게 증폭될 가능성을 경계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DP 디플레이터의 지속적이고 현격한 하락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정체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현재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1개월째 0%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두루 고려하면 저성장과 저물가 현상의 고착화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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