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담했던 올해 경상수지 흑자 600억 달러 달성이 불투명해졌다. 지난해에 사상 처음으로 6000억 달러 선을 돌파했던 수출도 다시 5000억 달러 대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 같은 분석은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10월 국제수지(잠정)’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 600억 달러 및 수출 6000억 달러 달성이 힘들 것으로 보는 배경엔 올해 남은 기간 동안의 수출 실적이 급격히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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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10월 경상수지는 78억3000만 달러 흑자로 기록됐다. 이 같은 흑자폭은 1년만에 기록된 최대치이다. 그러나 작년 같은 달의 흑자폭(94억7000만 달러)에 비하면 17.3%(16억4000만 달러)나 줄어들었다.

흑자폭 감소를 주도한 것은 상품수지였다. 올해 10월 상품수지 흑자는 80억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상품수지 흑자폭만 24억9000만 달러 감소했다. 작년 10월의 상품수지 흑자 규모는 105억2000만 달러였다.

올해 10월의 수출과 수입은 각각 491억2000만 달러, 410억9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과 비교했을 때 수출은 14.5%, 수입은 12.5%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 수출 감소세는 11개월째 이어졌다.

상품수지 악화를 줄여주거나 일부나마 상쇄해준 것은 서비스수지 적자폭의 축소와 본원소득수지의 확대였다. 10월 서비스수지는 17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에 비하면 적자폭이 3억4000만 달러 축소됐다. 이는 운송수지 적자폭이 1억7000만 달러 줄어든 것과 주로 연관돼 있다. 서비스수지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여행수지도 8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작년 10월 당시보다 4000만 달러의 수지 개선 효과를 보탰다.

임금 및 투자소득 등 부문에서 발생하는 내·외국인 간 차액을 나타내는 본원소득수지도 경상수지 개선에 일조했다. 10월 본원소득수지는 1년 전의 14억1000만 달러보다 4억1000만 달러 많은 18억3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투자기관과 기업들이 해외에서 받은 배당금이 이 부문 흑자 달성에 주로 기여했다.

올해 1~10월 누계 경상수지 흑자는 496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흑자 누계(674억2000만 달러)에 비하면 177억5000만 달러나 줄어든 실적이다. 이로써 올해 남은 두 달 동안 104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지 못하면 올해 경상수지 600억 달러 흑자 달성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참고로 지난해 11월과 12월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각각 50억6000만 달러와 48억2000만 달러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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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5월 말 전달의 월간 경상수지가 7년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자 부랴부랴 여론 관리에 나섰다. 4월 경상수지 적자를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결과로 치부하면서 당시 정부가 강조한 점은 그래도 올해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600억 달러는 넘어가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가 예상했던 대로 수일 뒤 발표된 4월 경상수지는 4억 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그런데 그 때 정부가 내놓은 연간 경상흑자 600억 달러 장담이 결국 허언이 될 가능성이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추세를 보자면 올해 경상수지 흑자의 600억 달러 달성은 쉽지 않은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능보다는 불가능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다고 보는 게 합리적 판단일 듯 싶다.

그 근거는 수출 부진의 장기화다. 현재 우리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로 11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기조가 올해 남은 기간 동안 갑자기 개선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미·중 무역협상의 1단계 합의가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가 제기되지만, 그렇더라도 수출의 단기간 내 가파른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올 들어 나타난 수출 감소 현상은 통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1~10월 수출 누계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51억7000만 달러보다 500억 달러 이상 적은 4527억6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수출이 지난해 사상 처음 6000억 달러를 넘긴 지 1년 만에 다시 5000억 달러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낳게 하는 수준이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의 구성 요소들인 수출·입 모두의 영향을 받지만 특히 수출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수출 부진이 지금처럼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는 경상수지 흑자폭의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상수지의 악화는 외환과 금 등으로 대표되는 대외결제 수단의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게 된 배경엔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따라서 경상수지가 적정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급격히 하락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한국은행 은행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2년 487억9100만 달러를 기록한 이후 줄곧 600억 달러를 넘겨왔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774억6700만 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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