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땅값이 기록적으로 폭등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같은 주장은 진보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에 의해 제기됐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의도가 무엇이든 경실련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투기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실련 주장의 요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에만 전국 토지의 가격이 2000조원 이상 급등했다는 것이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40년간의 땅값 변화 추이를 살펴본 결과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엔 3123조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엔 2054조원이 올랐다. 기타 정권별 땅값 상승폭은 김대중 정부 시절 1153조원, 박근혜 정부 시절 1107조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기간엔 전국의 땅값 총액이 195조원 줄어들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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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확인되는 흥미로운 점은, 주거용 부동산에 집중된 것이긴 했지만 부동산 안정 정책을 가장 강도 높게 추진한 참여정부와 현 정부 시절에 땅값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는 사실이다. 연평균으로 환원하면 문재인 정부 기간 중의 땅값 상승이 가장 가팔랐음을 알 수 있다. 정권별 연평균 땅값 상승폭은 문재인 정부 1027조원, 노무현 정부 625조원, 박근혜 정부 277조원, 김대중 정부 231조원, 이명박 정부 -39조원 등이었다.

경실련의 이번 발표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건물과 달리 땅은 지목이나 위치에 따라 거래가 활발히 이뤄질 수도, 그 반대로 장기간 동안 거래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정확한 가격을 산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필지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는 곧 땅값 산정엔 논란의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즉각 경실련의 발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그 같은 현실과 관련이 있다. 부동산 주무 당국인 국토교통부는 경실련 발표가 나오자 곧바로 땅값 산정 근거를 대라며, 그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경실련을 향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이에 경실련도 조건부 수락 의사를 밝혔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자료를 국토부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수락 조건이었다.

국토부가 제기한 문제의 요지는 경실련의 땅값 추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전국 땅값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것이 국토부의 주장이다. 경실련 측 주장과 차이를 발생시킨 주 요인은 땅값 산정시 반영되는 현실화율이었다.

토지 시세는 공시가격에 현실화율을 적용해 산출한다. 현실화율을 낮게 잡을수록 추산되는 땅값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어느 1억짜리 땅에 현실화율 50%를 적용하면 추산되는 땅값은 2억이 된다. 그런데 국토부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책정한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64.8%였다. 이미 공개된 이 같은 수치에도 불구하고 경실련은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을 43%로 삼은 뒤 전국의 토지 가격을 추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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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현실화율 64.8%를 적용하면 전국 땅값은 8352조원으로 계산된다고 밝혔다. 경실련이 기본적으로 전국의 땅값을 지나치게 높게 잡았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폭도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추산한 전국 땅값은 경실련이 43%의 현실화율을 적용해 계산한 1경1545조원보다 크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양측의 논쟁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땅뙈기 하나 없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누구 주장이 맞든 전국의 땅값이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서너 배가 된다는 사실, 최근 2년간 적어도 수백조원 단위로 그 값이 뛰었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경실련의 발표 내용에 발끈한 듯 나서는 국토부의 한심한 모습은 그 도가 지나쳐 경이롭기까지 하다. 행정 서비스 수요자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이 정도인가 싶어서이다. 경실련 또한 그 같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채 자신들의 땅값 산정 방식이 맞다는 것만 앞세우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의 관심은 땅값 상승폭의 크기가 아니라, 왜 그 같은 비합리적 상황이 장기간 해소되지 않는가에 모아져 있다. 따라서 향후 양측이 만나 토론을 하든 언쟁을 하든 담론의 주제는 땅값 안정 대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방식이 반드시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가동처럼 시장원리를 파괴하는 극단적 방법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작정 세금폭탄만 쏟아붓는 것은 정책이라 할 것도 없는 무모한 임기응변책에 불과하다. 땅에 대한 과세를 보다 합리적으로 하면서, 돈이 부동산으로만 몰리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종합 처방을 마련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땅값이 수백조원 올랐든 수천조원 올랐든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돈이 땅 대신 보다 생산적인 분야로 자연스레 흘러들도록 유도하는 방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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