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협상을 타결하는데 성공했다. 양측은 새달 초 이 합의안에 대한 공식 서명식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2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져온 양측 간의 무역 갈등은 당분간 긴장 완화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시장의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합의안 내용을 두고 양측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아직 이견이 남아있음을 짐작케 했다. 당장 중국의 미국 농산물 수입 규모를 두고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농산물 수입 약속을 이번 협상의 최대 결실로 선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규모가 500억 달러로 확정된 듯 말하고 있다. 내년 한 해 동안 중국이 그만큼의 농산물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키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500억 달러 언급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이전부터 그는 이 수치를 입에 올리며 중국을 압박하는 듯한 인상을 풍겨왔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까지 한 번도 구체적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내년의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농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중국을 압박하는 한편 허풍을 떠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던 중 미국의 교역 당국자 입에서 농산물 수입 규모와 관련한 구체적 발언이 나왔다.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이끈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단계 합의가 이뤄진 지난 13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중국이 향후 2년 동안 320억 달러어치의 미국 농산물을 추가 수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 측이 이와 별도로 연간 50억 달러어치를 더 구매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이 발언과 지난해 중국의 미국 농산물 수입 규모(약 240억 달러)를 종합해 분석하면 중국이 내년에 수입하기로 한 미국 농산물 규모는 400억 달러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정말로 50억 달러어치를 추가 구입한다면 그 액수는 450억 달러로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발언이 모두 사실이라 할지라도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확실히 보장받은 농산물 수출액은 400억 달러에 그친다. 이를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500억 달러를 강조하는 데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중서부의 농업지대인 팜벨트와 중서부 및 동북부의 러스트 벨트(부실화된 공업지대)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라이트하이저 대표에 의하면, 중국은 향후 2년 동안 농업과 제조업, 에너지, 서비스 등 4개 분야에서 미국산 제품 및 서비스 2000억 달러어치를 추가 구입키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농산물 수입 규모가 500억 달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제조 부문 수입 약속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다고만 말했다.

미국과 중국 간 입장차는 또 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고 있는 고율 관세의 향후 조정이 그 대상이다. 이달 15일부터로 예정됐던 1650억 달러어치에 대한 15%의 추가 관세 부과는 일단 유예됐다. 이에 대해서는 양측 간 주장이 일치한다.

그러나 기존의 고율 관세를 어떻게 조정키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양측이 서로 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국은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매겨오던 25%의 관세는 유지하면서, 조만간 1110억 달러어치의 수입품에 추가로 부과돼온 15%의 관세율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00억 달러어치의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와 관련,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율 관세 이슈를 2단계 협상의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15% 관세율 조정에 대해서는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1단계 합의 서명 이후 30일 뒤부터 합의의 효력이 발휘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합의 내용에 대해 다소 결이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중국 측은 미국이 대중(對中) 관세를 단계적으로 취소하기로 했으며, 2단계 합의는 1단계 합의 내용 이행 상황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중 관세의 점진적 축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2단계 합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중국 측 입장을 반박하려는 듯 미국은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1단계 합의안의 ‘이행 메커니즘’을 거론하면서 그 잠재적 변화 범위 안에서 추가 관세 부과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는 관세를 2단계 협상의 카드로 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함께 미국이 아직 고율 관세 폭탄을 거둬들이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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