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내놓았다. 12·16대책까지만 헤아린다 해도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18번째다. 지난 17일 국토교통부 실무자가 브리핑한 ‘2020년 부동산 가격공시 및 공시가격 신뢰성 제고방안’까지 포함시키면 그 수는 19번째로 늘어난다.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대책을 쏟아낸 셈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국토부의 주택 공시가격 제고 방안 역시 시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정책인 만큼 19번째 부동산 대책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련번호가 몇 번이 됐든,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 논란까지 부를 만한 내용을 담은 대책이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발표된다는 사실이다. 내용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횟수만 놓고 보더라도 이 정도면 ‘오기’의 발로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실제로 정부의 연이은 대책 발표를 보면서 참여정부 데자뷰를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시민들을 상대로 한 정부의 오기와 결기는 정책 내용에서 쉽게 느껴진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한 번 해보자는 식이다. 상대는 시장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했지만 마이동풍이다. 17번의 대책이 연이어 쏟아지는 동안 주택 시장은 보란 듯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정부는 정책 오류를 인정하는 대신 공격 강도를 높이는 데만 집중해왔다. 주된 목표는 수요 억제였다. 그 기조는 18번째, 19번째 정책으로 이어졌다.

지난 16~17일 정부가 연발한 정책의 주 내용들은 엽기적이라 할 만했다. 일부 내용을 두고는 주택 거래 허가제에 버금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핵심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고가 주택에 대한 보유세율과 세부담 상한 기준을 대폭 끌어올리는 한편 주택담보대출까지 제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과세 기준이 되는 주택 공시가격을 시세에 가깝게, 최대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이번에 정부 당국이 밝힌 새로운 대책들이다.

이번 대책을 두고도 벌써부터 시장 안정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단기적으로 주택 가격 상승세가 주춤해지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정책이 성공한 예가 없는데다 온갖 압박을 견뎌내는 동안 시장엔 이미 내성이 생겨났다는 점 때문이다.

정책 내용 자체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첫째가 사유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다. 자본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유재산권은 법률에 의해 철저히 보호받는다. 공익을 위해 제한적으로 재산권 행사를 억제하는 경우가 있지만, 거기엔 반드시 법률적 근거가 수반돼야 한다. 행정부가 일부 권한을 위임받긴 했지만 지금처럼 법률이 아닌, 정책을 동원해 과도하게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15억원 이상의 아파트에 대해 담보대출을 금지하기로 하자 곧바로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주택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도 여러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고가 주택에 차별적인 현실화율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시가격을 시세에 근접하게 한꺼번에 올리면 각종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전국의 모든 주택 시세를 일일이 파악할 수 없는 탓에 특정 주택의 경우 현실화율이 100%를 넘길 위험성도 있다. 이는 공시지가와 시세 사이에 일정 정도의 간격을 두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이번 대책이 안고 있는 더 심각한 문제는 집값 9억원을 기준으로 국민을 편가르기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코 앞에 닥친 총선에서 재미 좀 보겠다는 발상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래픽 = 리얼미터 제공]
[그래픽 = 리얼미터 제공]

부자에 대한 중과세 의지는 어느 사회에서나 절대다수의 환영을 받는다. 우리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여론을 물으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논리 만큼이나 명쾌한 결과가 나온다. 과세 문제를 여론을 빙자해 해결하려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극치다.

편가르기는 형평성 문제와도 연관된다.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을 조금 웃도는 시세 9억원을 기준으로 삼은 뒤 그 이상 가격의 주택에 대해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면 필히 형평성 시비가 생기게 된다. 이번 대책은 주택 전반에 대해 점진적으로 과세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준 이상의 주택을 타깃으로 정한 뒤 집중타를 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형평성 시비는 그 정도가 심해지면 조세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제성이 있는 만큼 각자가 납세를 하더라도 사회적 불만은 날로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정책에 대한 신뢰가 쌓일 수 없다. 신뢰 저하는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세금 부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 그로 인해 부담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주택에 물리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에 대해 매겨지는 세금 종류들이다. 실현 이득에 대해 양도소득세가 따로이 무겁게 부과되는 마당에 미실현 이득에까지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조세저항을 더욱 심각하게 자극할 수 있다.

너무도 상식적인 얘기이지만 세금은 최대 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적절히 부과하는 게 원칙이다. 과세에 대한 적정성이 확보될 때라야 계층 간 갈등도 최소화될 수 있다. 그 같은 노력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그 대상이 국민 전체가 됐든 특정 계층이 됐든, 가렴주구(苛斂誅求)를 경계해야 한다.

가렴주구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가혹한 정치를 구체적으로 대변하는 개념이다. 불행하게도 그 같은 가렴주구의 사례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 강남에 은마아파트와 맞먹는 국민주택 규모의 집 한 채를 가진 가구에 연간 600만~700만원의 보유세를 물리겠다는 것은 가렴주구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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