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년을 여는 2020년 새해가 시작됐다. ‘꺾어진’ 해라고 특별히 다를 게 무엇이냐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럴 때면 일반적 정서에는 각별함이 배어들기 마련이다.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그럴 것 같다. 막 지나간 시간들이 유별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때 마침 우리 경제는 변화된 내부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새해 시작과 함께 소위 경제통 총리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다. 변수가 있긴 하지만, 누가 되든 이번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총리직은 경제통에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회 동의 절차를 밟고 있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도 경제통이란 평을 듣는다. 입법부 수장 출신인 탓에 의전 서열 논란이 있지만, 총리로서의 소임만 충실히 완수해낸다면 사후 평가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정 후보자든 아니든 새 총리는 경제 하나만은 확실히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임명되는 경제통 총리이니 하는 소리다. 특히 정 후보자는 민간 대기업 임원 출신에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력 덕분에 실물경제와 행정 실무에도 밝다는 소릴 듣는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장관으로 발탁돼 입각하면서 당 대표 출신으로서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이후 업무 수행에서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총리 후보 지명이 이뤄진 현 시점에서 중요시해야 할 점은 그의 역량이다. 이력으로 보자면 그는 역대 총리 중 가장 안정감을 주는 총리감임에 틀림없다. 경제통이면서 세 차례의 당 대표(또는 의장)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이력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안정감까지 더해주는 요소다.

필자가 해석하기론, 문재인 대통령의 정 후보자 지명은 경제정책과 관련한 나름의 셈법이 작용한 결과인 듯 보인다. 냉정히 말하면, 재임 2년 반 남짓 동안 ‘어공’인 청와대 정책실장들을 앞세워 추진한 J노믹스는 실패작이었다. 경제적 성취도를 나타내는 지표들인 경제성장률, 산업생산, 설비투자와 민간소비 등 내수, 수출, 고용, 주가지수 등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이념적 성취에 치중한 나머지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가볍게 여긴 결과다.

대외 환경이 악화된 탓도 있다지만 주된 원인은 정책 오류다. 이와 다른 시각으로는 한국 경제가 남달리 부진한 모습을 보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활성화보다는 규제에 방점을 찍은 경제정책이 화근이었다. 정책 목표가 선한 것은 인정할 만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게 문제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결과가 당초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총리감으로 지목한 일이었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김 의원을 총리 후보자로 택한 일이나 대체 카드로 정 전 의장을 연이어 지명한 일 모두 정책 선회의 신호로 읽히는 대목들이다. 표면상으론 좌파적 경제정책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정책 추진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란 얘기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다만, 김진표 카드의 경우 발신하는 메시지가 워낙 선명하게 오른쪽을 지향하다 보니 진영 내부에서 불만이 노골화됐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좌파적 정책에 대한 오류의 선선한 인정은 곧 정치적 패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개연성이 있다. 더구나 지금은 총선을 목전에 둔 민감한 시점이 아닌가.

어찌 됐든 이번 총리 후보자 지명 과정은 경제정책에 대한 문 대통령의 속내를 일부 드러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속내는 곧 집권 후반기 경제정책의 실질적 변화 의지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변이 없는 한 그 선봉을 맡을 이가 정세균 총리일 것으로 예상된다.

진정으로 바라기는 정 총리 취임과 함께 경제정책을 명실상부하게 내각이 주도하는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 주도의 어설픈 정책 실험은 이 정도로 끝내고 경제정책 운용 체계부터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참모 기구일 뿐인 청와대 정책실이 사실상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법치주의에도 어긋난다. 정책실이 정책을 집행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새 총리 주도의 내각이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본주의 기본원리에 입각해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분배에 주목하되 최소한의 시장원리에 순응하면서 인과관계에 의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규제를 풀고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주가를 부양함으로써 산업생산을 늘리는데 신경을 쓰는 등 기본에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주가 부양은 기업들이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자본 조달을 원활히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투자 여력도 키워주는 길이다. 여기에 규제 혁파를 더해 투자 환경을 개선해준다면 산업생산이 늘고 고용도 자연스레 증대될 수 있다. 고용 증대는 민간소비 증가를 낳고 이는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문 대통령이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는 고용 상황도 이 같은 경로 속에서라야 자연스레 개선될 수 있다. 이를 무시한다면 대통령이 매일 일자리 상황판을 들여다보며 실무자들을 닦달한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럴수록 통계청은 고용동향 발표 때마다 ‘통계 마사지’ 유혹만 더 크게 느끼고, 경제부총리는 기자들 앞에서 주당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되는 노인들을 미끼로 “고용사정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분식 브리핑’에만 열을 올리고 싶어진다.

조세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을 부자와 빈자 두 계층으로 나눈 뒤 부자들에게 징벌적 과세를 행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소득을 두루 늘려줌으로써 자연스레 세수가 늘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들이 기업 투자와 민간소비 진작을 위해 오히려 감세 정책을 펼치고 있는 흐름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로써 정체된 성장률에 대한 민간의 기여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민간의 성장 기여도를 높이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저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지적이다. 경제정책 수행에 있어서 이 정권만의 왕도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 시장원리를 중시함으로써 순리에 따르는 것만이 경제 부흥의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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