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1단계 합의안에 대한 서명식이 오는 15일(미국 시간) 마무리될 수 있을까? 이 같은 물음은 아직 양국이 합의한 서명 일정을 공식발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날 서명식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서명식이 예정대로 열릴 것이란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일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연말 트위터를 통해 날짜는 물론 서명식 장소가 백악관이라는 것까지 못박아 공개한 것이 가장 확실한 근거다. 비록 공식 발표 형식은 아니었지만 미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무게를 감안하면 사실상 확정된 일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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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뒷받침하듯 중국 류허 부총리가 자국 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13일 미국을 방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소식에 정통한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5일 무역협상 소식통을 인용해 그같이 보도했다.

신문은 류 부총리 일행이 16일 귀국한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정황상 서명식이 15일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SCMP는 또 중국 대표단이 좀 더 이른 시점에 미국에 가려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15일을 언급하는 바람에 일정을 늦췄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미·중 협상은 미국이 내용과 일정을 주도하는 모양새를 연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나 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랑하듯 내용과 일정 등을 밝히면 중국이 마지못한 듯 그에 보조를 맞추곤 했다. 이번의 서명식 일자 및 장소도 그런 경로를 밟아가며 확정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중국이 서명식 일자 및 장소와 관련해 아무런 공식발표도 내놓지 않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서명식 이후엔 자신이 2단계 대화가 시작되는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방중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합의안 내용 중 중국이 농산물을 연간 500억 달러어치 정도 수입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일방적으로 공개했었다. 그 이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향후 2년에 걸쳐 매년 400억~500억 달러어치씩 사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 주장을 정리하면, 중국은 무역갈등이 본격화되기 전인 2017년 미국산 농산물을 240억 달러어치 구입했는데 연간 구입량을 이보다 최소 160억 달러 늘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매년 50억 달러어치의 농산물을 더 사들이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미국 측 주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까지도 이 내용을 분명히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중국은 1단계 합의안 작성 이전에도 농산물 수입 규모를 두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수입 증대 등을 언급했지만 그에 흔쾌히 동의하는 뜻을 밝힌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은 줄곧 미·중 간 신경전의 단골 문제로 인식돼왔다.

1단계 합의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서명식 일정에 대해서는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농산물 수입 물량과 관련해서는 미국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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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분위기는 7일 중국 경제지 차이신(財新)의 보도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지됐다. 중국 농업농촌부의 한쥔 부부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주요 농산물 수입의 쿼터를 조정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늘리기 위해 세계 각국을 염두에 두고 설정된 쿼터를 변경하는 것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현재 중국은 밀과 옥수수, 쌀 등 주요 농산물에 대해 쿼터제를 적용하고 있다. 대두에 대해서는 시장을 완전 개방한 상태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올해분 밀, 옥수수, 쌀 등 3개 주요 곡물의 수입 쿼터를 지난해 9월 발표했다. 각각의 수입 쿼터는 차례로 963만t, 720만t, 532만t이다. 이 쿼터는 예년의 실제 수입량의 배를 넘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즉, 중국으로서는 필요한 양을 모두 수입해도 쿼터를 채우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크게 늘리려면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 물량을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듯 보인다. 이 때 엉뚱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나라로 거론되는 곳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농업국가들이다. 설사 이들 나라로부터의 수입 물량을 줄인다 할지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물량을 중국이 모두 수입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점이 중국이 농산물 수입 문제를 두고 미국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배경이다.

난감해진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에는 동의하되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교역질서의 틀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국의 소화 능력을 감안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늘려가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미국 농민들의 표심을 얻고 싶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농산물 수입량 증대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따라서 농산물 수입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서명식이 이뤄진 이후에도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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