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경제학개론] 환율 조작국과 환율 관찰대상국
[나이스 경제학개론] 환율 조작국과 환율 관찰대상국
  • 박건학 기자
  • 승인 2020.01.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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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국에 의해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분류됐다. 기존의 지위가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이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재분류하리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재분류로 인해 한국이 관찰대상국 그룹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는 주요 교역국가들을 상대로 주기적으로 환율정책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다. 보고서 발간은 매년 4월과 10월에 이뤄지는 게 보통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5월에 보고서를 한 차례 발간하는데 그쳤다. 이번 보고서는 그 이후 처음 발간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미국은 주요 교역국들을 상대로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각각 따져본 뒤 그 중 두 가지를 충족하면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한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나라는 가차 없이 환율 조작국으로 분류된다.

그 세 가지 조건은 △지난 1년간의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초과하고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어가며 △12개월 간의 외환 순매수 규모가 GDP의 2%를 초과하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환율 조작국은 말 그대로 당국이 직접 개입해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지칭한다.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환율을 임의로 조작함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교역상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나라로 점찍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개념이다. 환율 관찰대상국은 환율 조작국보다는 덜 하지만 조작의 기미가 보이므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 나라라는 의미로 통한다. 물론 두 가지 개념 모두 미국의 시각에 입각해 형성되는 것들이다.

환율 조작국으로 분류되면 해당 국가에서 미국 기업이 투자할 때 금융지원을 금지하고,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입도 금지된다. 이밖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환율 정책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는 등 각종 불이익과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 나라에 대해서는 미국 재무부의 면밀한 관찰이 이뤄진다. 이 역시 대상 국가의 환율 정책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위의 세 가지 조건 중 경상흑자(4.4%) 한 가지만 충족해 환율 관찰대상국 지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을 드러냈다. 미국은 연이어 발간된 두 개의 보고서에서 각각 한 가지 요건만 충족하는 나라가 등장하면 그 나라를 환율 관찰대상국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국은 이번 보고서에서 다시 한 번 한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보고서에서 두 가지를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흑자 부문 외에 대미 무역흑자 부문에서도 규정 요건을 충족한 것이다. 한국은 이번 보고서의 분석 대상 기간(2018년 7월~2019년 6월) 동안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GDP의 4.0%를 기록했고, 대미 무역흑자는 203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무역흑자가 기준선보다 3억 달러 더 많았던 것으로 인해 환율 관찰대상국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 셈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직전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는 180억 달러였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운송장비 등의 수출이 호조를 보인 덕분에 그 규모가 200억 달러를 조금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미국이 설정한 세 가지 요건 중 하나인 외환시장 개입 부문에서는 문제를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오히려 원화가치 절하에 대응하기 위해 80억 달러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GDP 대비로 본 비율도 0.5%에 불과했다.

미국이 경계하는 외환시장 개입은 해당국 통화의 달러 대비 환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데 국한된다. 해당국가 통화의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결국 대미 교역에서 흑자폭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엄밀히 따지면 위의 세 가지 요건 중 미국의 의도에 제대로 부합하는 것은 세 번째의 외환시장 개입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 요건인 대미무역 흑자와 경상수지 흑자 규모 등은 환율 외에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은 외환시장 개입 정보를 보다 빈번히 공개하는 등 투명성 강화를 위한 가시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비근한 예로 한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입정보 공개 주기를 기존의 반기에서 분기로 줄였다. 이 같은 노력은 미국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이 설정한 요건에 의해 앞으로도 환율 관찰대상국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경상수지 흑자가 미국이 설정한 기준을 크게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배경이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2015년에 GDP의 7%를 웃돌다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지난해 4.5%를 기록한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이 정해둔 요건을 크게 웃돌고 있다.

문제는 대미 무역흑자 규모다. 그러나 이의 축소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덩달아 줄이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대외 결제능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수 없다.

한편 미국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환율 조작국에서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국이 경쟁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를 자제하려 하는 한편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로써 중국은 한국과 같이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중국의 지위 변경은 15일 워싱턴에서 진행될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안 서명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국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한국과 중국 외에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아일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10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