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역시 40대 연령층 및 주당 36시간 이상 고용 부문의 부진이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지난해의 연간 고용동향 자료 또한 같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부각시켜주었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폭은 51만6000명이나 되었다. 지난달 현재 전체 취업자 수가 2715만4000명으로 늘어난데 따른 결과다. 증가폭으로만 보면 5년 4개월 만에 가장 높다.

브리핑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브리핑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의 고용 관련 연간 집계치도 표면상으로는 매우 화려하다. 연간 취업자 수는 2018년보다 30만1000명 늘어난 2712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2018년의 9만7000명에 비하면 취업자 증가폭이 3배 이상으로 뛰어오른 셈이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1.1%를 기록했다.

이상의 수치들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고용시장엔 훈풍이 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월간 취업자 증가폭이 수십만, 12월의 경우처럼 50만을 넘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만 보면 엄청난 기록에 해당한다.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의 경우도 지난달 월간 취업자 증가폭(농업부문 제외)은 14만을 조금 웃돌았을 뿐이다.

미국에서 농업 부문이 차지하는 고용 비율은 전체의 2%에 못 미칠 만큼 미미한 상황이어서 노동부의 이 같은 집계치는 미국의 전체 고용동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비교하더라도 지난달 및 지난 한 해의 우리 고용상황은 엄청나게 좋아진 듯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럴 뿐 실속이 없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다.

가장 심각한 것이 40대 고용상황의 지속적인 악화다. 지난달 고용동향 자료만 보더라도 40대 연령층의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2만8000명이나 감소했다. 1년 동안 40대 인구가 10만1000명 감소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연령층의 퇴직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40대의 직장 퇴출 증가는 곧 안정적이고 질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40대는 사회의 중추이면서 대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실제로 지난달 40대 취업자 감소를 주도한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 수가 9만1000명에 달했다. 실직한 40대 취업자의 71%가 남성이었다는 뜻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40대의 조기 직장 퇴출은 사회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자리하기 마련이다. 중산층의 붕괴를 가속화한다는 점에서도 40대 일자리 감소는 사회 불안의 잠재적 요인으로 쌓이게 된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들은 60대 이상의 고령층이었다.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폭은 47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증가분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한 비율은 93%에 이른다. 정부가 취업자 증가폭이 50만을 넘겼다고 자랑하지만 실속은 없는 쭉정이 집계치임을 알 수 있다.

범위를 50세 이상으로 넓힌 뒤 통계청 자료를 들여다보면 더욱 참담한 느낌을 갖게 된다. 지난달 집계 기준으로 이 연령층의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폭을 계산하면 57만3000명이란 답이 나온다. 전체 취업자 증가폭이 51만6000명이었으니 결과적으로는 50세 미만의 취업자 현황을 따로 집계하면 5만7000개의 일자리가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 여건상 50세 이상,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이 새로 얻은 일자리는 알바성의 단기·단시간 근무를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근무시간대별 집계 자료도 이 같은 현상과 일부 맥락이 닿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늘어난 취업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주당 36시간 미만 근로자였다. 그 비율이 전체 증가분 51만6000명의 93.4%(48만2000명)나 됐다. 전체에서 주당 17시간 이하 근로자가 차지한 비율은 69.7%에 이르렀다.

주당 36시간은 고용의 질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유의미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 기준선 이상의 시간을 일하는 사람이라야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등의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된 일자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별 취업자 동향을 보아도 고용상황이 질적으로는 오히려 악화됐음을 감지할 수 있다. 지난달의 전년 동월 대비 산업별 취업자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17만8000명, 숙박 및 음식점업에서 10만명 증가했다. 반면 제조업(-1만5000명)과 도매 및 소매업(-9만4000명), 금융 및 보험업(-3만명), 건설업(-2만8000명) 등에서는 일자리 감소세가 이어졌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수입이 좋은 일자리가 감소한 대신 질 낮은 일자리가 그 자리를 메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연간 통계치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전년 대비 연간 통계치상으로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는 취업자가 16만명 늘었지만, 제조업과 금융 및 보험업에서는 각각 8만1000명, 4만명 감소했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은 정부의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문이다. 현행 통계 분류 기준에 따라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만들어진 일자리에서 주당 1시간만 일을 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이들 취업자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분야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다.

이와 달리 제조업이나 금융·보험업 등은 흔히 말하는 질좋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는 분야다. 30~40대들이 주축을 이루는 분야이기도 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2019년 고용동향 및 향후 정책방향 관련 합동브리핑을 통해 지난해에는 취업자 수와 고용률, 실업 등 3대 고용지표가 모두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고용 여건이 전반적으로 개선되면서 고용의 질과 관련된 성과도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40대 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40대 연령층의 전직을 위한 역량 강화, 창업 지원 등의 대책을 마련해 오는 3월중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표면적 주장과 달리 정부 내부에서도 40대 취업자 감소 문제를 심각히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한 답변이었다.

단시간 근로자가 취업자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기자 질문을 통해 제기됐다. 그러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과 가사의 양립 측면’ 등을 거론하면서 고용의 질이 낮아졌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집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단시간 근로를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단기·단시간 일자리가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안정적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단기·단시간 일자리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지속적으로 증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정 투입의 한계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는 올해의 증가폭 확대로 인한 기저효과가 통계수치 상 마이너스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계 해석 때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민간에서의 일자리 증가다. 그 주체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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