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디지털세 부과 결정으로 촉발된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갈등이 숨고르기 단계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측이 행동 대 행동으로 맞서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만은 당분간 피하기로 한 것이다. 행동을 자제하기로 한 시한은 오는 연말로 설정됐다.

구체적 행동이란 프랑스가 자국 내에서 영업중인 미국의 IT(정보기술) 공룡기업들에 대해 디지털세를 부과키로 한데 맞서 미국이 프랑스산 제품들을 상대로 고율관세를 부과하면, EU가 미국에 맞대응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싸움판이 점점 커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 AFP/연합뉴스]

미국과 EU는 그러지 않아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비 분담 문제, 이란 제재 동참 문제 등 정치·외교 및 군사 분야의 이슈를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2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하면서 유럽을 압박하는 발언을 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특히 자동차 강국들인 독일·프랑스·영국 등에 대해서는 자동차 관세 부과 의지를 드러낼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이 갈등을 키울 모든 보복관세 부과를 당분간 자제키로 했다는 긍정적 소식이 20일 전해졌다. 먼저 소식을 전한 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디지털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토론을 가졌다”고 소개한 뒤 “모든 관세 인상을 피한다는 합의를 토대로 관세 인상을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 간 대화는 하루 전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세는 프랑스가 지난해 7월 제도화한 세금 종류중 하나다. 디지털세를 도입하기는 유럽국가 중 프랑스가 처음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이 세금이 싼 아일랜드 등에 본사를 둔 뒤 실제로는 프랑스나 영국·독일 등을 주 무대로 활동함으로써 사실상 탈세를 일삼고 있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세금이다. 주 내용은 IT 대기업들이 프랑스에서 활동해 거둔 매출액의 3%를 징수한다는 것이다.

주요 타깃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이다. 이들이 주요 타깃이라는 점에서 디지털세는 ‘GAFA세’로도 불린다. GAFA는 위 네 개 기업의 이니셜이다. GAFA 외에도 글로벌 매출액이 7억5000만 유로 이상이고 프랑스 국내에서의 매출액이 2500만 유로 이상인 기업은 예외 없이 소정의 디지털세를 내야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 = EPA/연합뉴스]

프랑스가 이 세금을 제도화하자 글로벌 IT 기업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국가 일부에서도 이를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디지털세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유럽에서는 세율이 낮아 글로벌 IT기업 유치가 용이한 아일랜드나 이들의 투자가 아쉬운 동유럽 국가 등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GAFA가 주요 타깃인 만큼 가장 강하게 반발한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프랑스에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프랑스산 와인과 치즈, 명품 핸드백 등 상품에 대해 최고 100%까지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윽박질렀다. 이번에도 미국이 교역 상대국을 위협할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무역법 301조가 동원됐다.

그러나 프랑스는 물러서기는커녕 정공법으로 맞섰다. 미국이 프랑스산 제품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한다면 EU가 프랑스 대신 재보복에 나설 것임을 공언한 것이다.

미국-프랑스 양국 정상의 대화는 이런 분위기 속에 이뤄졌고 관세 분쟁을 1년 간 유예한다는데 대해 합의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이날 합의로 두 나라는 올해 말까지 대화를 이어가는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디지털세제의 세부 실천 방안 등을 논의키로 했다. OECD는 지난해 10월 글로벌 IT 기업들이 법인설립이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 돈을 벌었더라도 그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의 일반원칙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내용을 두고도 미국은 ‘선택적 적용’이 필요하다며 반발해왔다.

현재 프랑스는 OECD 내부 논의에서 디지털세에 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경우 독자적으로 만든 디지털세제를 폐지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