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1층 및 2층에 사는 사람들도 승강기 관리 비용을 다른 가구의 구성원들과 똑같이 부담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이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되살아났다. 최저층 거주자들로서는 승강기를 사용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그 관리비용을 고층 거주자와 균등하게 내는 것이 영 마뜩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잠재된 불만은 작은 계기만 마련되면 언제든 논쟁으로 비화하곤 했다. 최근엔 이와 관련한 다툼이 법적 심판까지 받은 사례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단초는 최근 마무리된 장기수선 충당금 관련 송사였다. 지난달 17일 서울남부지법은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주민이 제기한 장기수선 충당금 균등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주민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소송 내용은 입주자대표회의가 낡은 승강기 교체를 위해 장기수선 충당금을 인상하려 하자 승강기 관리비 균등 부담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소를 제기한 주민이 승소했고, 입주자대표회의가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이번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주민이 소를 제기한 이유는 1, 2층 주민의 경우 사실상 아파트 승강기를 사용할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승강기 교체비용을 똑같이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데 있었다. 이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1, 2층 주민에게 승강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재판부는 이 아파트 1, 2층 주민이 승강기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뒤 “장기수선 충당금 균등 부과가 부당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입주자 대표가 장기수선 충당금 추가 부담을 결정하기 전 의견 대립이 존재한다는 점, 차등 부과의 장단점, 기타 아파트의 사례 등을 충분히 소개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정 자체보다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 셈이다.

지금까지 주택관리 업체들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장기수선 충당금을 공급면적 기준에 따라 가구별로 부과해왔다. 그런데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을 거는 듯한 내용의 판결이 나오자 이들 업체는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판결이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만큼 기존의 관행에 변화를 줄 일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판결 내용이 모든 아파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이번 판결 내용의 적용은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회는 승강기 외에도 아파트 단지 내 시설엔 특정 가구들에게는 쓰임새가 없는 것들이 있지만, 이 시설들의 관리 비용을 일일이 가구별로 차등해 부과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대표적 예가 장애인 진입로와 노인정, 동별 지붕 방수 시설 등이 있다. 이들 시설은 모든 입주 가구에 고루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장기수선 충당금에 반영돼 주민들이 관리비용을 균등 부담하고 있다. 엄격한 사용자 부담 원칙대로 하자면 장애인 진입로 관리비용은 장애인이 있는 가구만, 노인정 운영비 등은 노인이 있는 가구만, 지붕 방수 비용은 고층 거주민들만 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게 합당한가 하는 것이 협회 측의 반문이다.

정부 당국도 이 같은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에 관한 법령에 대해 유권해석 권한을 지닌 국토교통부는 2012년 비슷한 민원이 제기됐을 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내용은 장기수선 충당금이 현행법상 주택공급 면적을 기준으로 부과되고 있으며, 저층 거주 가구라 해서 승강기 관리 비용을 감면해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승강기 관리비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노인정이나 장애인 진입로 등은 사회적 기여라는 측면에서 수용될 여지가 있지만, 승강기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점이 그 이유인 듯 보인다.

특히 위의 소송 사례처럼 지하 주차장이 없는 중·고층 아파트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비교적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아파트에서는 판결 취지대로 주민들 간 사전 대화와 논의를 통해 절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