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닥치고 승계?…하이트진로-서영이앤티의 전근대적 유착
[호루라기] 닥치고 승계?…하이트진로-서영이앤티의 전근대적 유착
  • 이수복 기자
  • 승인 2020.02.1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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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의미의 경제학 이론은 한 가지 중요한 기본전제를 깔고 있다. 모든 경제 주체들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비록 제한된 정보에 의존할망정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싸다는 판단이 서야 물건을 구매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구매 결정에 다른 변수가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 같은 전제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새로운 각성이다. 현대 소비자들은 단지 상품의 질이 좋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서울고등법원. [사진 = 연합뉴스]
서울고등법원. [사진 = 연합뉴스]

윤리적 소비란 자신의 소비행위가 사회적 윤리를 확립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소비자들은 상품이 제조·유통되는 과정, 기업의 환경에 대한 의식, 제조 과정에 동참하는 기타 기업들과의 상생에 대한 의지 등등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이런 흐름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전통 경제학의 기본전제를 흔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부쩍 강렬해진 감성적 소비 성향이다. 앞의 이유와 일부 연관된 것이긴 하지만, 현대 소비자들은 감성적 소구에 훨씬 쉽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반영해 기업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윤리경영 담당 부서를 두고, 갑질문화 근절에 앞장서는 한편 사회적 가치 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제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절이 됐다. 상대가 소비자든 하청업체든 그들 위에 군림한 채 냉철한 경제논리만을 앞세우는 기업은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발달로 이전보다 단합이 용이해진 소비자들의 벌떼 같은 공격을 받아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산업계에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의 구태의연한 부당 행위가 폭로되곤 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제재와 그에 대한 해당 기업의 반발로 열린 재판은 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문제의 기업은 하이트진로와 그 계열사인 서영이앤티다. 이들 기업의 행태는 최근 끝난 행정소송 재판을 통해 낱낱이 공개됐다. 지난 12일 서울고법 행정6부 심리로 열린 재판이 그 무대였다. 이날 재판은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가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청구 소송을 낸데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열렸다.

앞서 공정위는 하이트진로가 서영이앤티를 부당하게 지원했다고 보고 두 회사에 시정명령을 내리는 한편 각각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부과된 회사별 과징금은 하이트진로 79억여원, 서영이앤티 15억여원이었다. 서영이앤티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아들 박태영씨가 과반 지분을 소유한 회사다.

공정위 제재의 구체적 이유는 △하이트진로가 2008~2015년 서영에 직원을 보내 근무하게 하면서 임금 차액을 보전해주었고 △하이트진로가 삼광글라스라는 회사로부터 공급받던 맥주캔을 서영을 통해 공급받도록 함으로써 서영이 ‘통행세’를 챙기도록 도왔으며 △삼광글라스가 모 업체에서 공급받던 알루미늄 코일을 서영을 거쳐 구입하도록 경로를 바꾼 것 등이었다. 또한 서영이 보유한 A사의 주식을 정상가격보다 비싸게 팔도록 돕기 위해 하이트진로가 A사의 영업이익 등을 보장해주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미지 = 하이트진로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하이트진로 제공/연합뉴스]

하이트진로와 서영이 부당한 커넥션을 이루면서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부품 공급업체를 상대로 갑질을 했다고 볼 만한 정황들이었다. 이를 이유로 공정위가 하이트진로와 서영에 대해 제재를 가하자 이들 기업은 그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의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하이트진로의 서영에 대한 인력 지원, 통행세 등 부당이익 취득 지원 등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을 지지했다. 다만, 하이트진로가 서영으로 하여금 주식을 고가에 매각하도록 우회지원한 혐의에 대해서는 부당한 지원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관련된 공정위 판단에 대해 “처분 사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주식 고가 매도에 대한 지원 부분만 따로 떼어 과징금을 별도로 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하이트진로에 부과된 과징금 전체를 취소하도록 했다. 이로써 하이트진로는 79억원 남짓의 과징금 전체를 납부할 의무에서 벗어나게 됐다. 재판부는 그러나 서영에 부과된 과징금 15억여원은 그대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재판 결과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이트진로에 부과됐던 거액의 과징금이 모두 취소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이 그 중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공정위의 제재 내용에 주목하며 제재 조치 대부분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이트진로와 서영에 의해 저질러진 다수의 행동들이 주식 거래 관련 행위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법정에서 부당한 행위로 인정됐다는 사실이다. 본질은 하이트진로가 총수 2세가 소유한 회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부당한 지원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번 사건을 경영권 승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저질러진 방편으로 판단한 공정위의 입장에 재판부가 공감을 표한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형식은 원고 일부 승소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비웃은 계열사 부당 지원이었음을 재판부가 분명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는 이번 사건이 최종심으로 이어질지, 하이트진로가 거액의 과징금을 다시 물게 될지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친숙한 브랜드여야 할 하이트진로가 소비자들의 정서에 반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의 감성을 몹시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트진로가 뼛속 깊이 새겨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