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계속고용제도를 언급하자 정치권과 업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 제도를 도입하려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고용 연장에 대해서도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정부와 여당은 즉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문 대통령이 말한 고용 연장이 정년 연장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하기 시작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을 향해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여기에 언론이 그런 흐름을 전하면서 수면 아래로 잠겨들었던 고용 연장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다.

고용 연장 문제는 고령화·저출산 현상의 가속화 흐름을 감안하면 결코 한가한 이슈가 아니다. 선진 외국들의 움직임을 생각하면 우리의 행동은 오히려 뒤처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 정부가 국익보다 정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온 데다 지금이 총선을 목전에 둔 때라는 점이 이런저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현재 움직임은 서두르는 감을 주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이 제도를 문 대통령 임기 안에 도입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비추어봐도 그런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도입 여부 결정이 아니라 임기 내 도입이란 시간표를 작성한 뒤 주 52시간제나 최저임금제 등처럼 군사작전하듯 해치우려는 게 아닌가 의심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말하는 계속고용제도는 정년 퇴임한 사람이 추가로 근로계약을 맺고 더 오래 일을 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정부 설명대로 수년 전 도입된 정년 연장과는 다른 개념이다. 물론 정년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기업이 다양한 방안을 활용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 정년 연장과 구별된다.

지난해 정부가 밝힌 내용을 참고하면, 이 제도는 기업에 연장 고용 의무를 부과하되 그 방식은 기업이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고르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고용 연장의 세부 방안으로는 정년 연장과 정년 폐지, 재고용 등이 거론된다.

물론 여기엔 고령자 고용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임금 및 고용 체계 개편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고용 연장의 부담을 통째로 기업이 짊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게 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로서는 정부의 고용 연장 방침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시행된 각종 고용정책들로 인해 이미 기업의 부담이 가중됐고, 그 결과 경영활동이 상당 부분 위축됐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법인세 세율 조정으로 인해 실질적 증세가 이뤄진 점도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부담으로 느끼고 있다.

고용 연장의 제도화 방침에 대해 우려하는 쪽은 기업들만이 아니다. 그 우려는 대개 제도 도입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도입 과정과 맞물려 있다. 구체적 우려 내용은 앞서 언급한 대로 밀어붙이기식 제도화다.

원칙론을 말하자면, 고용 연장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구수는 줄어드는데 고령자 비율은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우리의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이미 그 같은 흐름을 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통계청 분석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향후 10년 간 생산가능인구가 매년 32만5000명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한 나라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고령인구 증가로 65세 이상 노인이 늘어나면 국가의 복지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도 문제다. 이 경우 생산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뉘어 돌아가는 노인 부양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종국엔 나라 경제가 역성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시대 흐름을 반영하듯 지난해 대법원은 육체노동 가동 연령의 한계를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이 판결은 고용 연장, 나아가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용 연장은 건강 상태의 개선과 수명 연장은 물론 인구구조의 변화 양상 모두를 감안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제로 굳어졌다.

문제는 당위성과 현실 여건은 별개라는 점이다. 필요한 건 맞지만 고용 연장은 당장 실현시키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무거운 과제다.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경우 그 과정에서 나타날 파장과 부작용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질 수 있어서이다.

예상되는 여러 부작용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이 연령대 간, 계층 간 갈등이다. 청년층과 고령층, 거대 노조의 확실한 보호를 받는 공기업 및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 간의 갈등 등이 그것이다. 섣부른 제도 도입이 기존 강자들의 입지만 더욱 탄탄히 해줌으로써 그룹 간 갈등을 보다 심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들 간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이들 간의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갈등 당사자들 간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의 도입 시점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관리다. 만약 특정 시점을 정해두고 일을 강행한다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점을 특정하지 말고 최대한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사·정 간 숙의를 통해 세부 계획을 다듬고, 정치권도 이에 발맞춰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실천해 가려면 정부부터 진정성을 갖고 입장을 가다듬어야 한다. 먼저 고용 연장이 정권 차원을 넘는 중장기 국가적 과제임을 분명히 한 뒤 시점에 구애받지 않는 가운데 민주적 절차에 의한 논의를 거듭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당장의 걸림돌인 총선용 시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