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또는 조 단위의 피해가 예상되는 초대형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해 금융권이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과정과 그 이후 나타나고 있는 관계사들의 볼썽사나운 행태로 인해 피해자들은 또 한 번 울분을 삼키고 있다. 그 배경엔 수익만 내면 그만이라는 금융사들의 천박한 배금주의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밝힌 ‘라임 사태’는 충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아직도 감독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전모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피해 규모가 최소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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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골자는 우리나라의 1호 헤지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이 판매한 1조6679억원의 펀드가 환매중단됐다는 것이었다. 총판매액 중 개인이 투자한 액수는 9943억원에 달했다. 환매 중단된 펀드 수는 모펀드를 기준으로 4개다. 이들 모펀드에는 173개 자펀드(계좌수 4616개)가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에 의하면 4개 모펀드 가운데 플루토FI D-1호(플루토)와 테티스 2호(테티스)에 대해서는 삼일회계법인의 실사가 끝났다. 이를 토대로 라임이 조정한 플루토와 테티스의 평가금액은 18일 기준으로 각각 4606억원, 1655억원이었다. 지난 9월말 대비 손실률은 각각 49%와 30%에 이른다. 이들 두 개의 펀드에서만 5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향후 나머지 펀드에 대한 실사가 끝나고 나면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정확한 피해 규모를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실사가 끝나야 하지만 자금 회수가 원활히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일부 펀드의 경우 이미 원금이 전부 날아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어떤 펀드에서는 증권사와 총수익 스와프(TRS) 계약을 맺은 탓에 해당 증권사들이 우선 변제권을 갖게 된다.

TRS는 펀드가 증권사로부터 돈을 끌어다 쓰는 일종의 대출 개념으로서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증권사가 우선 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라임펀드에 이 같은 방식의 대출이 적용된 것은 신한금융투자의 제안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금융 당국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라임 사태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문제가 불거지기까지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의 모럴 해저드, 나아가 사기로 의심될 만한 부적절한 행위들이 줄지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펀드 운용과 판매 과정에서 각자 금융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일이었다.

그들의 비윤리적 행태를 들여다보면 저절로 혀가 내둘러진다. 우선 펀드 운용사인 라임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좇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 조사 결과 라임은 환금성이 약한 만기 2~3년 짜리 자산에 투자하면서도 개방형 펀드를 만들어 운용했다. 그 자체가 문제였다. 개방형 펀드가 투자자들이 언제든 환매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보면 처음부터 문제의 소지를 안은 채 펀드를 운용했다고 볼 수 있어서이다. TRS 계약을 통해 대책 없이 펀드의 위험도를 높인 것도 문제였다.

라임의 부적절한 행태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라임은 펀드들 간 자산 인수 방식을 통해 부실 돌려막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일부 임직원은 자신들만의 전용 펀드를 만든 뒤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대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이는 특정 코스닥 상장사의 전환사채를 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사모펀드로서는 전에 없던 TRS 계약을 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에게 그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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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내용도 드러났다. 금감원에 의하면 라임은 금융펀드 투자처인 미국 IIG편드가 2018년 6월 경 기준가격을 내지 않고 있음을 인지하고도 그 해 11월까지 임의로 해당 펀드의 기준가가 매달 0.45%씩 오른 것으로 허위 처리했다. 또 IIG펀드로부터 부실에 의해 청산절차에 돌입했다는 이메일을 받고도 라임운용의 다른 펀드로 하여금 무역금융 펀드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는 신한금투도 개입됐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은 이 같은 행동에 사기 또는 배임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기관에 그 내용을 통보했다.

펀드 판매사들의 부적절한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라임 펀드를 판매한 19개 금융사 중에서도 특히 신한금투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IIG펀드의 부실 감추기 의혹이다. 신한금투는 라임펀드에 TRS 계약을 적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주체라는 주장과도 연관돼 있다. 그로써 라임은 신한금투 외에 KB증권, 한국투자증권과도 TRS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펀드를 판매하는 일은 대신증권이 맡았다.

신한금투와 함께 금감원의 첫 번째 조사 대상으로 지목된 우리은행도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다. 중앙일보는 최근 보도에서 우리은행이 지난해 2월말 라임펀드의 부실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판매를 곧바로 중단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태 점검과 내부 검토 등으로 인해 다소 시간이 지체됐다고는 하지만 소비자 보호가 뒷전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우리은행은 그에 앞서 일부 직원들이 장기간 거래가 없는 고객들의 온라인 비밀번호를 임의로 바꾸는 어이없는 짓을 한 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번 라임 사태로 인해 금융 소비자들의 시선이 따가워지자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들은 운용사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완전 판매 의혹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기는커녕 대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TRS 계약의 위험성에 대한 고지가 불충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로 반응하고 있다.

신한금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위험 회피 노력이 부실했다는 외부의 지적을 부인했다. 특히 TRS 계약 건과 관련, 그는 “라임과 TRS 운용에 대한 협의가 있었을 뿐”이라며 “위험성 고지는 운용사가 관여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불완전판매 논란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라임 펀드 판매사 중 하나인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수조사를 실시했다”며 “그 결과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로부터도 비슷한 유의 답변을 들었다. 한 관계자는 “(문제가 된) 상품 자체가 원금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펀드 운용에 대해서는 판매사가 알 수 없다”고 선을 긋는 자세를 보였다.

안내와 위험성 고지 부실을 호소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해자가 수천명을 헤아리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지겠다는 곳은 없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적 시비를 떠나 금융사들의 펀드 판매는 수익 목적만으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어차피 고위험 상품이 아니냐는 항변은 설득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금융이 갖는 공적 기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의 공적 기능은 은행권 부실이 심각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과거 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금융의 공공성은 금융사가 아쉬울 때만 소환되는 개념이 아니다.

향후 벌어질 투자자 피해 구제 및 분쟁 조정 과정에서나마 금융사들의 성의 있는 행동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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