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면서 원화값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환율 변동성 심화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맞물리면서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5일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원/달러 환율은 지난 4거래일 동안에만 20원 넘게 상승(원화값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4일엔 하루 사이 11원이나 올랐고, 당일 기준으로 3거래일 간 오른 환율은 30.9원을 기록했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9원 내린 1210.30원(종가 기준)을 기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원화 가치 변화 추이. [그래픽 = 연합뉴스]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하는 기본 원인은 우한 폐렴 국내 확진자 수의 빠른 증가세이다. 이 일로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바람에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는 달러화 값을 끌어올렸고, 반대로 불안전자산으로 취급되는 원화의 가치는 상대적 약세를 보이게 됐다.

안전자산 수요 증가 추세는 금값과 엔화값 상승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원화뿐 아니라 위안화 역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위안화는 중국이 코로나19의 발원지인 만큼 약세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원화 가치 흐름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한국이 중국 다음의 심각한 전염병 감염국이란 오명을 쓰면서 원화값은 갑작스레 약화되기 시작했다. 근래 들어 원/달러 환율과 위안/달러 환율 간의 동조화 현상이 심화된 점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 동조화는 우리 경제의 대(對)중국 의존 심화와 맞물려 있다.

최근의 원/달러 환율 흐름을 보다 세부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우한 폐렴이 미칠 중국 및 한국 경제에 대한 악영향이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5% 정도를 소화해주는 나라다. 그런 중국의 경기가 전염병 창궐로 심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겐 일차적 악재다. 거기에 더해 우리 경제마저 전염병의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으니 한국으로서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더구나 근래 들어서는 두 나라 간 가치사슬이 보다 촘촘해지면서 중국은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의 부품 공급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사스나 메르스 사태 당시보다 훨씬 심화됐다는 게 일반론이다. 두 나라 화폐의 달러 대비 환율이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것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더욱 긴밀해진 현실과 관련이 있다.

우한 폐렴에서 초래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외국인 자금의 해외 이탈을 촉진했다. 달러 등 외화를 국내로 들여온 외국인들이 환차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원화를 외화로 환전한 뒤 그 돈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4일 하루 동안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이 7800억원 넘게 빠져나간 것이 그런 현상을 실증해주었다.

외국인 자금 유출은 원/달러 환율 상승에 이중의 자극을 가하는 요소다. 지금처럼 외화 자금이 이탈하는 시점에서는 달러화 등의 신규 유입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게 보통이다.

미국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점 또한 원/달러 환율 상승을 자극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미국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달러 강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작용을 하고 있다. 곳곳에서 제기되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원화 가치 하락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의미다. 일부 외국 금융사는 한은이 조만간 기준금리를 최대 0.5%포인트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기준금리 인하설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가 열리는 오는 27일을 앞두고 곳곳에서 제기돼왔다. 금리 인하설은 지난 18일부터 대구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 더욱 자주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움직임은 금리 인하설에도 한층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급한 상황에서 보다 빨리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은 금리 인하라는 점 때문이다. 추경 추진은 그 자체로도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키는 재료가 될 수 있다.

금리를 내리면 그러지 않아도 불안감이 남아 있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거릴 수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에 대한 심각한 우려 탓에 부동산 시장 안정은 단기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원/달러 환율을 하락시킬 요인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연구기관들은 당분간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를 두고는 다소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당분간은 1200원대 초반에서 등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지난 한 달여 동안 환율이 어지간히 올랐다는 점이 그 같은 판단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우한 폐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이달 25일 현재까지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52.2원이나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우한 폐렴 사태의 종식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향후 원/달러 환율의 상승 한계가 결정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 한계는 대개 1200원대 초반에 모아져 있다.

키움증권 김유미 연구원의 경우 과거 사스 사태의 사례에 비춰볼 때 지금의 원/달러 환율은 주춤할 수 있는 수준이란 시각을 드러냈다. 그에 의하면 2003년 2월 사스 확진자 발생이 최초 보고된 이후 3월 초부터 4월 초 사이에 원/달러 환율은 60원 남짓 상승했다. 최근 한 달여 동안의 환율 상승분보다 조금 더 큰 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사태 악화시 원/달러 환율이 1250원선까지도 상승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