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금융권까지 연루된 라임 펀드 사태가 점입가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고객들을 현혹시켜 부실한 금융상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정보가 빈약할 수밖에 없는 4000여(계좌수 기준) 개인 투자자들이 부도덕한 돈벌이의 주요 타깃이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이번 사태의 폭발성을 키우며 금융 소비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주요인이다. 항간에서는 그렇게 했으니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도 은행 같은 금융사들이 짭짤한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판이다.

처음 라임 사태와 함께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일반의 시선은 PB(Private Banking)들에게 쏠렸다. 이들이 실적쌓기에 치중한 나머지 펀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고객을 유혹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금융사 직원으로부터 투자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듣지 못했다”는 피해 고객들의 아우성이 커질수록 PB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따가워졌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자산 포트폴리오 전문가인 금융사 PB는 최일선에서 고객들을 대면하며 투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금융고객들은 이들의 전문성은 물론 그들이 속한 금융사의 공신력을 믿고 그들의 안내를 따르는 게 보통이다. 이들은 차장 또는 부지점장급의 중간 간부들로서 일정한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 전문가들이다. 은행 측 설명에 의하면 원한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금융 상식이 부족한 일반 고객들은 가까운 친·인척이나 지인의 투자 권유엔 고개를 갸우뚱해도 금융사 PB들의 조언엔 쉽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가 시중은행이거나 주요 증권사 소속의 자산관리 전문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신뢰를 기반으로 아예 금융사 PB를 개인 집사처럼 활용하는 자산가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는 PB들에 대한 기존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말았다. 더구나 금융감독원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DLF) 불완전판매 논란 속에 우리·하나금융지주를 징계한 것이 불과 한 달여 전의 일이었다. DLF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논란 당시에도 PB들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불붙었던 논쟁은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가 PB들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스템상의 문제인가 하는데 모아져 있었다. 즉, 금융사 경영진의 책임을 인정한 감독 당국의 관점이 옳은가 여부가 논쟁의 요지였던 것이다. 해당 논쟁은 사실상 PB들의 일차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우리·하나금융 사례에서 보듯 금융권에서 불완전판매 문제가 불거지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르는 이들이 PB들이었다. 하지만 라임 사태가 불거지고, 피해자들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 문제가 PB들의 개인적 도덕성이나 역량과 관련된 것만은 아님을 시사하는 정황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금융사들이 기관 차원에서 불완전판매를 묵인 또는 방조, 나아가 조장한 정황까지 나타났다. 반대로 PB들이 불완전판매의 주도자이기는커녕 금융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됐을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25일 SBS CNBC 보도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라임이 운용하는 펀드를 팔면서 사내 감사기구를 통해 판매직원들을 압박, 고객들에게 정보 제공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내부 자료나 정보의 제공을 막으면서 은근히 해고 가능성까지 암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림으로써 고객의 선택을 도와야 할 금융사가 그 반대로 고객의 올바른 판단을 고의로 방해했다는 얘기다.

신한은행은 이런 방식 등을 동원해 라임 사모펀드를 2700억원가량 팔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중 개인에게 판매된 액수만 쳐도 1697억원이나 된다. 개인투자자 1인당 판매액은 4억3071만원이었다. 신한은행은 19개 라임 펀드 판매사 중 개인 투자자 1인당 판매액에서 1위를 기록했다. 

시민단체인 금융정의연대는 신한은행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정의연대는 “신한은행이 판매 상품의 주요 내용을 허위로 안내했다”고 주장했다. 필요한 자료나 정보를 감춘 것을 넘어 거짓 정보를 줌으로써 고객을 속였다는 얘기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내 감사기구의 PB 압박설에 대해 해명하면서 “금감원에 민원이 제기되면 해당 PB에게 사실 확인을 한다”면서 “감사부가 고용불안을 야기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신한은행이 판매한 펀드는 1등급의 무역금융펀드가 아니라 중위험·중수익의 안전한 채권을 담보로 한 3등급 펀드였으나 환매 중단 이전에 라임이 임의로 해당 펀드를 1등급으로 편입시켰다”고 항변했다. 신한은행이 오히려 억울한 입장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고객들의 불안한 마음이 불완전판매 논란을 키우고 있음을 내세우면서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을 둘러싼 불완전판매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비윤리성으로 치면 KB증권도 도긴개긴이라 할 만하다. KB증권은 라임 펀드 관련 상품을 팔면서 PB들에게 TRS(총수익스와프) 우선 변제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TRS는 펀드가 은행이나 증권사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다 쓰는 대출 개념이어서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은행·증권사 등이 우선 변제권을 갖는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자면 TRS 계약이 돼있는 펀드 상품의 위험도는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을 회사 측이 PB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불완전판매를 조장했다는 것이 KB증권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의 주내용이다.

기자가 관련 의혹에 대해 묻자 KB증권 관계자는 “PB들에게 사전 교육을 통해 레버리지 100% 사용, 다양한 원금손실 가능성 등 TRS 위험성을 알려줬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문제의 펀드는 초고위험 1등급 펀드로서 고객 안내서에 고지돼 있다”며 “고객에게 안내서를 교부했다는 확인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객이 확인하는 서류를 검토한 뒤 판매했으므로 위험성을 PB들이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TRS의 위험성에 대한 사전 고지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선·후순위 여부를 떠나 통합 레버리지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선 변제권’ 여부에 대해 PB들에게 분명히 언급했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은연중 PB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임 펀드 사태는 피해 규모도 규모이지만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가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다수 피해자들과 PB들의 증언을 통해 하나 둘 표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은행들의 비윤리성은 다른 측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KB증권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라임 운용 관련 TRS를 줄이는 과정에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라임 펀드(AI스타)를 판매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로써 해당 펀드 관련 상품을 산 고객들만 큰 손실을 입게 됐다.

결국 이번 라임 사태는 다수 금융기관들이 돈벌이에 혈안이 된 나머지 공신력을 미끼로 금융 소비자들을 농락한 희대의 흑역사로 기록되리라 여겨진다. 어차피 기록될 흑역사라면 향후 금융사들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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