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결국 기준금리 동결 카드(1.25% 유지)를 택했다. 인하와 동결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로서는 ‘일단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즉, 우한 폐렴(코로나19) 확산이 심상치 않지만 그 영향이 지표로 나타나는 것을 보아가며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27일 금통위의 결정을 뒷받침한 요소들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추론 가능한 굵직한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그 둘은 각종 부작용 돌출 가능성, 금리인하 효과의 불확실성 등이다.

금리 인하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미리부터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화정책 문제를 거론하면서 “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한 폐렴 확산과 관련된 금리 인하설에 대해서는 “국내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일단 선을 그으려는 입장을 취했다. 감염병이 어디까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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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가 말한 부작용의 의미를 추정하건대, 가장 먼저 연상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시장 안정성 저하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무려 19번이나 대책을 쏟아내며 집중 관리한 결과 겨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특정 지역을 타기팅한 뒤 세제와 금융 수단 등을 총동원해 강한 억제 정책을 펴는 동안 일부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은 전반적으로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내렸다가는 자칫 응력이 남아 있는 부동산 시장에 뇌관 하나를 추가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하나 한은이 우려했음직한 부작용으로는 최근 증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인 자금 엑소더스 현상의 심화를 생각할 수 있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연일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6일까지 주식시장에서 기록된 외국인 자금 순매도 규모는 2조4439억원이었다. 이달 들어서만 이만큼의 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은 요즘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26일 하루에만 1조원 이상의 돈이 시장에서 이탈했다는 사실이 현 상황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면 자금 이탈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는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어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는 그 나라 화폐 가치를 낮추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환율이 불안한 시점에서는 부정적 측면이 부각될 수도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환차손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 손실이 커질수록 투자금을 회수해 외화로 환전한 뒤 국내 시장에서 이탈하는 게 이익이라 여기기 쉽다.

한은이 이날 금리 동결을 결정한 두 번째 중요한 이유는 효과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금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춘다 한들 별다른 긍정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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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기준금리가 낮은 상황에서의 추가 인하는 중앙은행에 큰 부담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향후 사용할 통화정책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는 게 문제다. 기준금리가 0%에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더 낮춰야 할 심각한 상황을 만났을 때 중앙은행이 대처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비축된 실탄이 거의 바닥나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은이 어느 시점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근 모건 스탠리는 감염병 사태가 보다 악화될 경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인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비 스텝’으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전망의 배경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것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적절하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금리 인하의 적기를 놓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후자의 시각은 통화정책을 다룰 한은 금통위 회의가 3월엔 열리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회의 일정상 한은은 4월 회의가 열릴 때까지는 감염병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도 기준금리를 변경할 수 없다.

이번 금통위 회의가 열리기 전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 같은 기대 심리를 반영해 준 것이 채권 금리의 인하 추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가 대부분은 금리 동결을 예상했었다. 한은이 미리 금리 동결에 대한 신호를 보낸 데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금리 동결이 결정됐지만 전반적 분위기로 볼 때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와 압력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결국 한은은 차기 금통위 회의(4월 9일)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관심사는 인하 여부보다 그 폭이 어느 정도일까에 집중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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