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7일 기준금리를 1.25% 그대로 동결했다. 금리 동결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금리 동결이 인상 또는 하락보다 흔했다. 과거 어떤 한은 수장은 금리 변동에 신중한 스탠스를 장기간 이어간다는 이유로 언론에 의해 ‘동결 ○○’라는 냉소적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름자 앞에 ‘동결’이란 말이 수사처럼 덧붙여진 것이었다.

하지만 동결도 하나의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 자체도 때맞춰 금리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통화정책 담당자들의 고심의 산물이다. 동결에도 나름의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금리 동결 결정에 담긴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경기 변동성이 크지 않아 특별히 통화정책에 변화를 줄 필요성이 없어서 선택했던 과거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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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이번에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비쳐졌다.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동시에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치보다 0.2%포인트나 낮춘 것이 그 이유였다. 한은은 이날 우리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바꾸어 제시했다. 기존 전망치 2.3%에 비하면 비교적 큰 폭의 수정이라 할 만하다.

금리 동결은 경기 변동성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의 산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의 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은 의외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따라서 경제 상황이 안 좋다고 판단하면서 왜 금리를 동결했느냐고 되물을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날 결정에는 보다 복합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그 의미를 되새기자면 우리 경제 상황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마땅한 해법도 없다는 한은의 고심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 경제가 딜레마에 빠져 있고, 그것이 곧 한은의 딜레마로 연결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은의 고민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여건조차 안 된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통위 회의를 수일 앞두고 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자칫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져서 독약이 될 가능성을 우려했으리라는 얘기다.

우려했던 금리 인하의 부작용은 부동산 시장 불안정성 증대와 외국인 자금의 추가 이탈이었을 것이다. 부동산 매매를 위한 대출을 한껏 죄어놓았다지만 가계대출 문제 또한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기준금리 1%선에 접근해 있는 지금의 저금리 상황도 금리 인하 결정을 어렵게 한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바짝 다가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한도를 5조원 더 늘리는 것이었다. 금중대는 한은이 시중은행들에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개념이다. 용도는 중소기업 대출이다. 금중대는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대출의 50%를 지원하는 제도이므로 이번 한은 결정으로 인해 중소기업 저금리 대출 규모는 10조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이 방식은 시중 유동성을 늘리지 않으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됐다. 금리 인하라는 거시 정책을 취하지 않는 대신 특정 경제주체에 효과를 집중시키기 위해 미시 정책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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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의 이번 결정은 지금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통화정책 당국이 경제를 띄우기 위해 동원할 마땅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통화정책이 안 먹힐 때의 경기 부양 대책으로 재정 지출 확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위험성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중독이란 비난이 일 만큼 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그 결과 올해 예산과 관련해서도 이미 60조원어치의 적자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다. 이것도 모자라 벌써부터 10조원을 훌쩍 넘는 규모의 ‘코로나 추경’ 편성이 논의되고 있다. 불가피성 여부를 떠나 이 모두가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일들이다.

그러니 재정에 기대 경제를 떠받치는 정책도 이젠 한계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황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안 좋아졌다. 성장률, 산업생산, 수출, 내수, 근로소득, 고용 등등과 관련된 모든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최근 수년 사이 뜻하지 않은 대외 악재가 연이어 닥쳤고, 지금은 감염병 사태까지 겪는 상황이지만 경제사정 악화엔 정부의 정책 오류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

대외 악재 탓, 감염병 탓도 좋지만 이 참에 경제정책의 기본틀을 재검검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성장률 0%대 전망까지 등장할 만큼 경제 활력이 떨어져갈 정도의 비상한 상황이라면 대응 방식도 그에 맞게 비상한 것이어야 한다. 성장 엔진이 완전히 꺼지기까지 고민을 위해 주어진 시간마저 그리 많지 않다면 더욱 서둘러야 할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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