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가 새로운 한 주를 맞아 ‘블랙 위크’의 충격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기사회생이라 할 정도의 극적인 반전이다. 지난주 세계 증시는 우한 폐렴(코로나19) 팬데믹 가능성의 재부상과 함께 최악의 한 주를 보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증시가 예외 없이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CNBC에 따르면 뉴욕 증시에서는 지난 한 주 동안 시가총액 기준으로 3조1800억 달러(약 3786조원)가 증발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7배 정도가 한 주 동안 날아가버린 셈이다. 불과 일주일 만에 다우지수는 12.4%, S&P500지수는 11.5%나 하락했다. 뉴욕 증시를 대표하는 이들 지수의 주간 하락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각 최대폭이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 = EPA/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사진 = EPA/연합뉴스]

유럽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지수 역시 금융위기 이후 최대인 12.7%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들 증시에 비해서는 하락률이 작았지만 한국 증시도 크게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다. 코스피의 경우 지난 한 주 동안 8.13%나 폭락했다. 특히 마지막 거래일이었던 28일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코스피는 이날 하루에만 67.88포인트(3.3%)나 하락했다.

그러나 각국 증시는 이번 주 들어 전주의 하락분을 급히 만회하는 움직임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2일(이하 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지수가 5.0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덩달아 코스피를 포함한 아시아 증시도 반등 장세를 과시했다.

이처럼 세계 증시를 움직인 것은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말 한마디였다. 이들은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이 끝나자 약속이나 한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두 개입에 나섰다. 거의 동시에 나온 반응으로 인해 ‘공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 주인공들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세 명이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자면, 이들은 이번 주 들어 세계 증시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꾼 일등공신들이라 할 수 있다. 일등공신을 굳이 한 사람으로 좁히자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파월 의장을 꼽아야 할 것이다.

파월 의장의 구두 개입은 특히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뉴욕 증시가 심상찮은 하락세를 보이자 긴급성명을 냈다. 요지는 두 가지였다. ‘우한 폐렴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와 ‘적절한 방법을 활용하겠다’는 발언이 그 둘이었다.

원론적인 내용이었지만 때가 때인 만큼 발언이 갖는 무게는 상당했다. 긴급성명이라는 형식도 시장에 주는 메시지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시장은 그의 발언을 통화당국의 적극적 시장 개입 의지로 읽었다. 동시에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구체적 분석까지 제시됐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갖는 무게는 평소 그가 쌓아온 신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 같은 신뢰는 그가 의연하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한데 따른 결과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 때도 없는 금리 인하 요구에 꿈쩍도 않던 그가 작심하고 나선 듯한 분위기가 엿보이자 시장은 별 고민 없이 위험자산 투자로 눈길을 되돌렸다.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 총재들의 추임새도 파월 의장의 메시지에 힘을 보탰다. 구로다 BOJ 총재는 2일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적절한 금융시장 조정을 위해 자산 매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라가르드 ECB 총재도 공식성명을 발표했다. 그 역시 우한 폐렴 사태를 언급하면서 “필요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증시 객장 모습. [사진 = UPI/연합뉴스]
뉴욕증시 객장 모습. [사진 = UPI/연합뉴스]

이들의 움직임은 자본시장이 흔들리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적시에 시장에 내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나 더 눈여겨 볼 점은 1.50~1.75%의 기준금리를 설정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 및 일본 중앙은행이 현재 제로 또는 마이너스 금리를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CB는 0%, BOJ는 -0.1%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중앙은행으로서는 기준금리 조절 카드를 이미 상실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앙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경기 부양에 나설 의지가 있음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국채 매입 등을 통한 중앙은행 보유자산 확대 방안 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취한 행동의 적시성과 과감성이다. 그 배경엔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 외에 총재 스스로의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중앙은행 수장의 자신감이 없었더라면 이번과 같은 즉시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에 보여준 파월 등 중앙은행 총재들의 기민하고도 과감한 대응은 통화정책 책임자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하는 흔치 않은 사례다. 이들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시의성 없는 신중함은 우유부단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런 만큼 이번 긴급성명 건은 우리가 사례연구 대상으로 삼아도 좋을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