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슈퍼급 규모라 할 추가경정예산안이 지난 5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른바 코로나19(우한 폐렴) 대응 추경이라는 것이다. 이번의 정부 확정 추경안은 규모 면에서 역대 네 번째이자 현 정부 들어 매년 편성된 추경 중 최대를 기록하게 됐다.

이처럼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은 초스피드로 짜여졌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었다. 당시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 말마따나 머지않아 우한 폐렴이 국내에서 종식될 것이란 인식이 정부 내에 팽배해 있었다.

5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정세균 총리. [사진 = 연합뉴스]
5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정세균 총리.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대구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지난달 말경부터 정부 당국자 입에서 추경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세출 기준으로 6조2000억원보다 적지 않은 선에서 추경을 편성하겠다는 뜻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그 말이 있고 나서 닷새만인 지난 4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11조7000억원(세출 기준 8조5000억원)의 추경안을 확정했다.

그간의 일정은 물론 정부의 입장 변화 과정을 보면 이번 추경안이 얼마나 다급하게 만들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천지라는 의외의 변수가 나타나 상황이 급변한 사정이 있다지만, 정부가 근거 없는 낙관론에 젖어 있었던 게 추경안을 급조한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짧다고 모든 일이 ‘졸속’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마음자세만 갖춰져 있었다면 준비 기간은 무의미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추경안은 정황상 잘 준비된 가운데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지난 한 달 사이 정부가 보인 갈지자 행보가 그 배경이다. 정부는 처음엔 보유중인 예비비로 감염병 사태에 대응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며칠 뒤 6조2000억 남짓, 그리고 또 며칠 뒤엔 8조5000억원의 세출 추경안 카드를 내밀었다.

그 탓일까. 정부가 확정한 추경안은 국회에 제출되자마자 야당으로부터 ‘3무 졸속추경’이란 혹평을 들었다. 미래통합당은 추경안을 받아든 첫날부터 그 앞에 ‘무(無)국민, 무의지, 무대응의 3무’라는 수사를 붙여가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시점상 공연히 ‘총선용’ 시비에 휘말릴 개연성이 있고, 제1 야당 또한 정권 심판에 집중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통합당의 지적엔 수긍할 만한 측면이 있다. 감염병 사태를 극복하려는 순수한 열정이 담겨 있다고 여기기 힘든 부분들이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일언이폐지하고 한가지만 지적하자면, 감염병 사태 극복을 위한 추경에 왜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현금살포성 지원이 포함됐느냐 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세균 총리는 추경안 제출 당일 국회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이번 추경이 ‘코로나19 조기 극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통합당 지적대로 이번 추경안에는 대규모 상품권 지급을 위한 지출 항목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0~7세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에 아동 1명당 40만원어치의 지역사랑 상품권을 네 달에 걸쳐 분할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만 1조500억원이다.

비슷한 지출 항목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저소득층과 노인 등에게도 넉 달에 걸쳐 비슷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특정된 500만명에게 현금성 지원을 하기 위해 할당된 액수는 총 규모가 2조원에 이른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판국이니 야당 쪽에서 이번 추경을 ‘총선용’이라 비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동 및 취약 계층 지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긴급 재난으로 비화한 감염병 사태 극복을 위해 편성된 추경에 상시적 정부 업무 성격의 지출 항목들이 대규모로 포함돼 있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이는 누가 봐도 속보이는 행태이고, 국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열불이 날 일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안전을 보강해줄 최소한의 수단인 마스크 공급 하나 제대로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려고 512조원 이상의 올해 슈퍼 예산안을 국회에서 강행통과시킨 뒤 그에 더해 세입경정까지 해가며 또 다시 12조에 육박하는 슈퍼 추경을 구성한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미래당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제1 야당으로서 추경안의 문제점을 해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추경안 내용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여당 못지않은 생색내기 시도를 꾀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이종배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추경안을 ‘국민 호도용’이라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번 추경안에 보육예산을 활용한 가정당 50만원 지원을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앞뒤가 안 맞는 제안일뿐더러 통합당발(發) 내로남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추경은 아직은 추산조차 힘든 세입 결손까지 미리 감안해 세입경정을 해가며 짜여졌다. 세출분이든 세입경정분이든 모두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예산이요, 그중 대부분은 당장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해 메워야 할 대상이다. 추가 발행해야 할 적자국채 규모만 10조3000억원이다. 그러니 추경을 최대한 작게 편성한 뒤 효율성 있게 집행함으로써 재정건전성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당연한 의무다.

그 첫걸음이 뜬금없는 선심성 퍼주기 항목의 철저한 배제다. 더구나 총선이 눈앞에 있는 만큼 국민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두 눈 부릅뜬 채 추경 처리 과정을 지켜볼 것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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