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는 외부 명망가들의 전문성과 식견을 기업 경영에 활용하는 동시에 오너 경영의 폐단을 일정 정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사외이사제가 기업의 인맥관리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현재의 사외이사제도는 나름의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는다. 순수하게 전문적 식견을 기업 경영에 접목시키면서 감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외이사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 입장에서는 언제든 영업활동에서의 편의성 증대 등을 위해 사외이사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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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업들은 사외이사 후보로 전직 관료나 교수, 심지어 유력 언론사의 간부급 기자 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교수들의 경우 정부 기관에서 운영하는 모모한 위원회 등에 빈번히 참여하는 인물이라면 더욱 선호도가 높다. 기업들의 속내를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보면 종종 그런 인상을 받게 된다.

선호하는 대상이 비슷비슷한 탓인지 복수의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이들도 있다.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이 사외이사직을 여럿 갖게 될 경우 부업으로 얻는 수입이 본업의 그것보다 더 커지는 일도 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현실이 이러하니 사외이사 제의를 마다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주변을 보건대 사외이사직을 여럿 지닌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사외이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이는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측이나 당사자로 참여하는 측 모두 보다 신중히 행동해야 하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래야만 사외이사에 대한 신뢰가 증대되고 제도 본래의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력 인사가 하나은행 사외이사를 맡기로 한 일이 그것이다. 그 주인공은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준비단장이다.

주지하다시피 공수처 설립은 제1 야당의 격한 반발 속에 정부·여당이 밀어붙여 확정한 일이다. 이를 감안할 때 이 기구의 설립준비단장이 현재 우리사회의 권력 지형도에서 차지하는 좌표가 어디 쯤에 찍혀 있는지는 불문가지다.

때마침 하나금융지주는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기관 제재 및 경영진에 대한 제재를 동시에 받고 있다. 제재는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DLF)의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비롯됐다. 이번 제재로 인해 하나금융지주의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돼온 함영주 부회장은 여차직 하면 회사를 떠나야 할 위기를 맞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함 부회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지난 5일자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향후 3년 동안 금융권에서 임원 취임에 제한을 받게 됐다. 즉, 내년 3월 열릴 하나금융 주주총회에서 임원 후보로 나설 수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에는 외부 변수만 없다면 함 부회장이 내년 봄 주총에서 김정태 회장의 뒤를 이어 차기 하나금융 수장 자리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지금 함 부회장은 금융 당국의 제재를 수용하든지,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을 연이어 제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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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 측도 현재 이 문제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함 부회장과 하나금융 측이 법적 대응에 나선다면 금융 당국과 껄끄럽고도 피곤한 관계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그만큼 각별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 남기명 단장이 하나은행 사외이사로 가기로 했으니 이런저런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 할 판이다.

앞서 하나은행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남 단장을 새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사외이사 선임 건은 오는 19일 열릴 주총에서 확정된다.

이 문제로 각종 구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하나은행 측은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단지 사외이사로 추천된 것일 뿐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주총에서 결정되는 일이니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함 부회장 징계 건에 대한 법적 대응 의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세간의 의혹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범상치 않은 사외이사 선임 건을 바라보는 금융 소비자들의 시선은 그리 평범하지도, 그리 고울 것 같지도 않다는 게 기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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