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거취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관련 발언은 최근 열린 당내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도됐다. 평소 ‘가짜 뉴스’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여당이 그 같은 보도를 정면 반박하지 않는 것을 보면 발언 내용은 사실인 듯 보인다.

전해진 발언 내용은 “(홍 부총리가)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나라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홍 부총리가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 대응용 추경의 규모 확대에 선뜻 동의하지 않자 나온, 정제되지 못한 반응이었다.

이 대표의 발언 내용이 공개되자 민주당은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섰다. 대표 비서실장은 “경질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경질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강한 톤이었고, 질책 같은 것은 있었다”며 홍 부총리에 대한 강한 불만이 토로됐을 뿐임을 강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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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발언 내용은 홍 부총리를 통해 다시 한 번 분명한 사실로 굳어졌다. 홍 부총리는 문제의 발언이 불거진 다음날인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추경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전후 맥락으로 보아 여당 대표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기존의 소신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홍 부총리는 우선 추경 규모에 대해 언급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마련한 추경안이 대상 사업에 대한 검토와 재정 여력 등을 두루 고려해 만들어졌음을 강조했다. 어려운 계층을 지원하고 경제도 살리면서 재정 지원의 합리성·형평성을 고려하는 한편 재정건전성과 여력까지도 치밀하게 들여다봤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글 속엔 방어 차원을 넘어 반격하는 듯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홍 부총리는 “혹여 (자신이) 자리에 연연해 하는 사람으로 비쳐질까 걱정”이라며 “지금은 뜨거운 가슴뿐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국회에 기 제출된 정부의 추경안이 함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 대표의 공격을 받아넘기는 동시에 추경 증액 요구를 완곡하게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사령탑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최소한의 대응이라 생각한다.

그간 홍 부총리가 보여온 언행으로 볼 때 이 글은 의외로 강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전임자에 비해 청와대 및 여당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그 결과 홍 부총리는 간혹 실세 장관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듣곤 했다.

현재의 정부 직제상 경제부총리는 우리나라의 경제사령탑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돼 있다. 청와대 정책실의 특별한 위상으로 인해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일반화돼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정상적인 모습을 경계하는 표현일 뿐이다. 정책실이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전면에 나서 주도한다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의 경제부총리는 기획재정부 장관직을 겸하고 있다. 이는 홍 부총리가 우리나라의 곳간지기로서 소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니 경제부총리는 청와대와 여당이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재정을 낭비하려는 무모한 욕심을 드러낼 때 직을 걸고 곳간을 지켜야 하는 인물이다. 재정건전성을 지켜내는 것은 기재부 장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추경안만 하더라도 홍 부총리의 당초 의중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편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추경안이 그가 수일 전에 공개한 것보다 2조원 이상 증가한 규모였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정부 추경안의 규모는 11조7000억원에 이른다. 결코 작은 액수라 할 수 없다. 비록 세입경정분이 3조2000억원 포함돼 있다고는 하지만 올해 본예산이 512조 이상으로 짜여진 것을 감안하면 슈퍼 본예산에 슈퍼 추경이 편성되는 셈이다. 그런 만큼 청와대나 여당이 마냥 실탄 부족을 탓할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올해의 슈퍼 본예산만 해도 60조2000억원의 적자국채 발행을 전제로 삼고 있다. 여기에 11조7000억원의 추경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올해 예산으로 인한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70조5000억원으로 또 한 번 늘어난다. 이 돈을 누가 갚아야 하는지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부담은 지금의 20대를 지나 곧 본격적으로 납세자 대열에 합류할 10대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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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여당은 현재의 추경 규모를 더 늘리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증액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여당은 추경 규모를 18조원 이상으로 키우려 하고 있다. 규모도 문제려니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지난 11일의 당·정·청 회의에 홍 부총리가 빠진 것 또한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 곳간지기마저 배제한 채 브레이크 없는 돈 쓰기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추경 규모를 키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효성 있게 돈을 쓰느냐 여부다. 그게 국가재정법 취지에도 부합한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추경은 덜 걷되 민간에 돈이 돌도록 하는 방향으로 치밀하게 짜여져야 한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심사 단계에 있는 기존의 추경안만 보더라도 과연 그런 기본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지역별·산업분야별로 곳곳에서 감염병 사태로 인해 비명이 터지는데, 직접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현금성 지원을 한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더구나 7세 미만 아동을 둔 가구나 노인 가구 등 특정 계층에 풀기로 한 2조원 남짓의 돈은 5년 시효의 상품권으로 지급될 예정이어서 당장 경기를 데우는데 활용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러니 통합당 등에서 “선거용 추경”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무작정 규모를 늘린 추경은 그 크기만큼 국민들의 부담으로 추가돼 돌아오게 돼 있다. 미성년 세대의 부담을 논하기 이전에 당장 모든 경제주체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그 대가는 조만간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진행될 증세로 인한 기업과 개인들의 부담 증가다.

추경 규모를 무차별적으로 키우면 선심은 당대의 정부와 여당이 쓰고 그 부담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추경 편성이 특히나 여당 주도로, 그것도 견제 없이 이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경은 여당 대표가 아니라 엄격한 책임의식과 함께 곳간의 열쇠를 쥔 경제사령탑 주도로 추진되는 게 맞다. 그 역할을 표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당 대표가 대신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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