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연이어 파격적 조치를 내놓고 있다.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거듭된 조치는 연준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키고 있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연준의 조치들은 세계의 중앙은행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전세계 금융시장의 흐름을 선도해가고 있다.

파격의 시작은 기준금리 1%포인트 인하 및 7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결정이었다. 이처럼 과감한 결정은 현지시간으로 일요일이던 지난 15일 내려졌다. 예상보다 강력한 조치에 자본시장은 놀란 나머지 오히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연준이 우한 폐렴(코로나19) 사태의 위험성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시장에 부정적 메시지를 보냈다는 비판적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감염병 사태를 바라보는 연준의 시선은 엄혹했고, 연이은 추가 조치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미국 월가 모습. [사진 = UPI/연합뉴스]
미국 월가 모습. [사진 = UPI/연합뉴스]

연준이 새롭게 빼든 카드 역시 시장의 허를 찌를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연준이 17일(현지시간) 밝힌 새로운 조치는 기업어음(CP) 시장에도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거치지 않고 민간기업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연준이 매입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3개월 짜리 달러 표시 CP다. 여기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도 포함된다.

연준의 CP 매입은 감염병 사태로 인해 당장 현금 확보가 어려워진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통상 중앙은행은 일반 은행 등 시중의 금융기관을 통해 민간에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 같은 원칙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들은 개인 가구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예대 업무를 취급하지 않는다.

이번 조치를 실행하기 위해 연준은 재무부 승인을 얻어 CP 매입기구(CPFF: 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를 설치하기로 했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가 몰려왔던 당시에도 이 기구를 설치해 한시적으로 운영한 바 있다. CPFF는 산하의 특수목적기구를 통해 CP 매입에 나서게 된다. 이로써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중앙은행과 기업 간에 간접금융이 이뤄지게 된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무부는 연준이 신용손실을 입지 않도록 돕기 위해 100억 달러(약 12조3800억원)를 지원한다.

중앙은행의 기본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이 조치는 ‘예외적이고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권한을 근거로 삼고 있다. 이는 연준이 지금의 우한 폐렴 팬데믹을 매우 심각하고 응급을 요하는 사태로 판단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번 조치가 발표되기 전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이 회사채 등을 집적 사들이는 방식으로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다.

연준은 이번 조치와 별도로 초단기 유동성 공급 정책도 연이어 펼쳤다. 5000억 달러 한도에서 하루짜리 환매조건부채권(REPO) 거래를 함으로써 이틀째 초단기 시장에 돈을 대량으로 쏟아부은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사진 = EPA/연합뉴스]

미 재무부가 같은 날 1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것과 별개로 연준은 이번 조치를 밝힘으로써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었다. 일반적 수단인 금리조절 외에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유동성 조절, 특수 상황에 대한 맞춤형 처방인 CP매입까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다양한 방안을 동원했다.

한편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17일 연준의 각종 통화공급 정책과 별개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도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여당인 공화당 상원 의원들에게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제시한 뒤 기자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면서 “1조 달러 투입 방안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세부 내용에 대해 밝히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부양책 안에는 미국인들에게 현금 1000달러씩을 지급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상공인 대출 지원 3000억 달러, 현금지급 용도 2500억 달러 등에 납세기한 연장에 필요한 자금까지 더하면 정부 부양책의 총 규모는 1조2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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