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단은 배타성과 통합성을 동시에 지닌다. 밖으로는 배타적이면서 안으로는 통합을 지향한다. 이를 대표하는 감정이 애국심이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들어가면 한 나라 안에서도 무수한 집단들이 공존한다. 그들 각 집단은 선택적 이익을 기반으로 자연스레 구성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들 집단은 저마다 배타성과 통합성이란 모순된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사회 갈등이다. 그 같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에게 주어진 기본 책무다.

국가 지도자들 스스로도 예외 없이 갈등 조정과 통합을 강조한다. 국가 지도자 치고 선거 캠페인 과정과 취임사에서 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의 전·현직 대통령들 모두가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을 통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취임식이 열린 2017년 5월 10일을 지칭하며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문 대통령인들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 통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통합되지 못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권력을 가진 쪽이 포용력을 보이기는커녕 정치적 대화 상대를 적폐로 몰아세우며 자신들끼리의 내부 결집만 다져온 게 문제였다. 오죽하면 사회 일각에서 ‘신오적’이란 자조적인 말이 나왔겠는가. 서울대 간 게 죄이고 강남에 산다는 것, 기업을 키워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 등등이 모두 죄가 된다는 의미의 비아냥 섞인 표현이 ‘신오적’이다.

사실 편가르기는 참여정부가 남긴 못된 유산중 하나다. 이는 탈권위와 정치의 대중화는 물론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 권력의 과감한 지방 이양, 사법부 독립과 검찰 중립성 강화, 언론자유의 신장 등등 참여정부가 남긴 숱한 업적에 누가 되는 독소적 요소다.

편가르기를 우리 사회의 고질로 보는 의견이 적지 않지만, 필자는 지금 시점에 관한 한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 참여정부에서 계승된 현 정부의 편가르기는 집권과 권력 유지를 위한 유용한 전략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실제로 8대 2 또는 9대 1로 편을 가른 뒤 소수집단을 공격하는 것은 지금의 집권 세력에게는 늘 효율적인 승리의 법칙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친일 대 반일의 대립구도, 패스트 트랙 정국과 조국 사태 와중에 조성됐던 개혁 대 반개혁 대결구도 등이 좋은 사례였다.

지금 큰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도 따지고 보면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애써 7대 3 편가르기를 관철하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던 지난달 29일의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대 80%의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주자고 주장했다. 소득을 기준으로 상위 20%만을 배제하려 했으나 50%안을 주장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의견을 참고해 결국 하위 70% 그룹을 재난지원금 수혜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8대 2가 7대 3으로 바뀌었지만 여당의 숨겨진 기본 취지는 유지된 셈이다. 8대 2에 비하면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어차피 내편일 것 같지 않은 소수를 배제하고 다수 그룹을 향해 자신들의 각별한 관심을 어필할 수 있으니 여당으로서는 다행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 국민들을 소득 수준에 따라 두부모 자르듯 둘로 가른 뒤 어느 한 쪽에만 돈을 몰아주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그런 비합리적 구상을 별다른 고민 없이 실행에 옮기려 한다는 자체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더구나 가시화돼 있지도 않은 소득을 기준으로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주겠다고 하니 당장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국민 개개인들로서는 자신의 경제적 위상이 어디 쯤에 자리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동은 정부 여당이 시간에 쫓긴 나머지 기준 소득의 개념조차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돈을 주겠다고 발표부터 한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은 월소득 1만원 또는 1000원 차이로 70% 경계선을 벗어난 사람들이 느낄 박탈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70%를 다급히 끌어안을 생각에 매몰된 나머지 뻔한 부작용을 헤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정·청이 이 점을 미리 예상하고도 그랬다면 이번 일은 더욱 발칙한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실행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실행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백번 양보해 선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당이야 그렇다 치자.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번 대책의 입안 과정에 동참한 정부 관료들의 행태다. 이처럼 엉성한 대책을 만드는데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일시적 현상이긴 하지만 평소 기천원을 더 번다는 이유로 특정 가구의 소득이 70% 경계선에 턱걸이한 가구보다 느닷없이 100만원가량이나 적어지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일이라 여긴다는 것일까.

세무 관리가 아니더라도 그런 유의 비합리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전문 관료들이다. 이 같은 불합리를 방지하기 위해 부자에게 더 많은 세율을 적용하면서 택하고 있는 것이 초과누진세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소득세율을 적용하되 특정 소득액을 경계로 정한 뒤 일괄적으로 정해진 세율을 적용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만약 초과누진세제를 적용하지 않은 채 그렇게 한다면 일정 소득액을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세율이 바뀜에 따라 오히려 이전보다 세후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같은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 소득세나 종부세 등을 부과할 때엔 동일인 또는 동일 주택의 경우라 할지라도 구간별로 세율을 따로 매겨 적용하고 있다.

예상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분위기상 정부는 큰 틀에서 당·정·청의 결정을 흩트리지 않는 가운데 대안을 마련해 일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기껏해야 그 대안은 추산이 용이한 범위 안에서 부동산 등의 소득인정액을 일부 적용하는 정도로 가구소득 산정 기준을 만든 뒤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지원금에서 비롯된 소동과 혼란을 가라앉힐 수 없다. 당연히 국민 화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7대 3 편가르기의 기본틀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편가르기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이미 제시해주었고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이 권고하고 있는 계단식 하후상박 원칙의 적용이 그것이다. 기왕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결정했다면 여기에도 초과누진세제의 합리성을 접목해보자는 얘기다. 정부 여당도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인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