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마지막 기회를 맞았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된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는 점이 그 이유다.

지난 15일 끝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국회의석 과반 하한인 150석을 훌쩍 넘기는 성적을 올렸다. 지역구 선거에서만 253석 중 163석을 얻은 것이다. 여기에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의석수 17석을 합치면 실제 의석수는 180석으로 늘어난다. 범위를 범여권으로 넓히면 그 수는 190석으로 더 많아진다. 정의당 6석과 열린민주당 3석, 그리고 호남에서 유일하게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용호 의원이 범여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로써 여당은 혼자만의 의지로 국회선진화법상 패스트 트랙에 모든 법안을 태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4+1’ 협의체 같은 비정상적 조직을 무리하게 만들어 운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웬만한 법안 처리와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임명직에 대한 비준도 단독으로 행할 수 있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하는 헌법 개정안 의결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여당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실상 무소불위의 입법권력을 여당이 거머쥐게 된 셈이다.

어디 그 것뿐인가. 정권 출범 이후 개혁이란 이름 아래 줄기차게 물갈이 인사를 단행해오면서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사법권까지 상당 부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곧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활용해 검찰 수사권마저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다.

총선 직후 공개된 4명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후보자들 또한 면면을 보니 현 정권과 적극적으로 코드를 맞춰온 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검찰권과 마찬가지로 명분상 독립성이 강조되는 통화정책 분야까지 정권의 의도대로 작동될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한은 총재 및 부총재와 함께 통화정책을 이끌어갈 금통위원의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는다.

이상을 뭉뚱그려 해석하자면, 이번 총선 결과는 유권자들이 정부·여당에게 소신껏 국정을 펼쳐보라고 화끈하게 기회를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쳇말로 정부·여당을 향해 ‘어디 한 번 솜씨 좀 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미다.

이런 메시지는 결과적으로 야당에겐 총선 참패라는 의미로 다가갔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그것도 대통령의 임기 중반 무렵에 야당을 심판한다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그 점이 이번 총선 결과를 야당에 대한 응징이라기보다 여당에 대한 확실한 지지 표명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으로서는 그 동안 ‘꼰대’ 이미지를 털어내지도, 스스로 탄핵의 강을 건너지도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정권 다툼 차원에서 그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다. 노력을 통해 수권능력을 입증해보이면 다시 한 번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보다 확실히 보장해줄 대상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이제부터 중요하게 지켜봐야 할 점은 정부·여당의 움직임이다. 국민들이 마음껏 재주를 펼쳐 보이라고 멍석을 깔아주었으니 기대에 부응하는 솜씨를 펼쳐보여야 한다. 이제부터는 ‘발목잡기’ 등등의 핑계도 통하지 않게 됐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제1 야당에겐 그럴 만한 최소한의 견제 능력도 남아 있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니 이 시점부터 정부·여당은 모든 실책에 대해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을 말해야 한다.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승리의 기쁨에 취해 환호하기 이전에 무거운 책임감부터 느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책임감은 이전의 숱한 과오들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경제정책과 관련해 정부·여당은 고집스러운 입장을 유지해왔으면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일이 거론할 것도 없이 모든 경제 관련 지표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 탓인지 여당은 이번 총선 유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키워드였던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이란 말을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꺼내지 않았다.

과문에서 비롯된 오해인지 모르나, 정부·여당 인사들의 입에서 소득주도성장이니 탈원전이니 하는 단어가 튀어나온 지는 꽤나 오래됐다. 이는 곧 정책실패를 은연중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오류를 인정한다면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어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방향 전환을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제부터 나타나는 모든 정책 운용의 결과는 전적으로 재량권을 거머쥔 정부·여당의 책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제한 없는 재량권은 무한책임을 동시에 요한다는 점을 정부·여당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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